[르포]울산 가출청소년 동행 체험에 참가해 보니...
‘가출 청소년’의 사전적 의미는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간 10대들을 말한다. 그들은 왜 가족공동체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낯선 거리를 부유하게 됐을까.
뉴스1은 26일 울산남구여자단기청소년쉼터와 울산시남자단기청소년쉼터가 함께 마련한 가출청소년 동행 체험 행사에 참가해 가출 청소년의 애기를 직접 들었다.
16살 소녀 이연재(가명·여·울산남구여자단기청소년쉼터), 스스로 집을 나와 밖에서 생활하는 이른바 가출 청소년이다.
연재의 첫 인상은 여느 또래 10대 소녀들처럼 꾸밈없고 해맑았다.
가출 청소년 연재와의 동행은 오후 7시 10분쯤, 남구 신정동 울산남구여자단기청소년쉼터를 나오면서 시작됐다.
연재는 지난 8월 집을 나와 처음으로 생면부지의 낯선 거리를 헤맸던 중구 성남동 일대로 먼저 발길을 잡았다.
걸어서 25분, 16살 소녀의 첫 가출 시발점인 성남동 CGV영화관 건물에 도착, 인근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내놓은 벤치에 자리를 마주 잡았다.
연재가 집을 나오게 된 연원은 뿌리가 깊었지만 결정적 계기는 2009년 7월 새벽녁에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탕! 탕! 탕! “여기가 이연수네 집이죠, 문 좀 열어봐요” 누군가 거칠게 현관문을 두드리며 연재 언니 이름을 거명하며 문 열기를 재촉했다.
신새벽 정적을 깬 이날의 '노크' 소리는 수년 간 자행된 천륜을 저버린 연재 친아버지의 만행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시그널이었지만 연재 가정이 해체되는 비운의 굉음이기도 했다.
연재 아버지는 이날 새벽 형사들과 집을 나간뒤 귀가하지 못하고 현재도 교도소에 수감중이다.
“아버지가 구속되고 2~3일 뒤에 어머니가 남동생만 데리고 온다간다 말없이 집을 나가 버렸어요. 집 나간 어머니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언니와 얼마나 울었는지….”
이 때 연재는 또 다른 가족사를 알게 되면서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집 나간 어머니가 자신을 낳아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때 왜 어머니가 언니와 저를 남겨 둔 채 남동생만 데리고 집을 나간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친어머니로 알고 정말 믿고 따랐는데...결국 어머니는 10년 이상 키운 저희 자매를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버린 셈이잖아요.”
전혀 준비도, 예상치도 못한 부모와의 생이별로 연재 자매는 사실상 고아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 때가 연재 나이 13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더 큰 시련은 할머니와 동거하면서 비롯된다. 아버지의 구속에 연재 자매가 관련됐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할머니를 비롯한 삼촌의 모진 학대가 시작된 것이다.
“더러운 피를 물려받은 000보다 못한 인간이다”라는 욕설에 더해진 연재 자매에 대한 정서적, 신체적 학대는 나날이 도를 넘어갔다.
한 번씩 할머니 집을 찾아 온 삼촌의 매질은 더 혹독했다. 어느덧 맞는 게 일상화된 현실은 10대 초반의 연재가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고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사실 저는 힘들고 배고프고 아픈 것을 원래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나날이 심해지는 할머니의 학대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다.
연재와 애기를 나누는 가운데 바깥 바람은 늦은 10월의 매서움을 차츰 더해갔다.
오후 10시를 넘어서자 추위와 허기가 동시에 온 몸에 스며들었다. 가출 청소년의 일상적 ‘춥고 배고픔’이 드디어 스멀스멀 찾아든 것이다.
주최측으로부터 받은 행사 참가비는 차비와 용돈(?)를 포함해 8천원 남짓. 어른 한끼 식사값으로 둘이서 허기를 채우고 늦가을의 차디찬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고 무사귀환해야되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김밥, 라면...한 끼를 가장 싸게 떼우는 음식을 고민하는 기자에게 연재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성남동 젊음의 거리의 토스트 가게로 이끌었다.
5분 남짓 걸어 도착한 성남동 A토스트 가게. 청소년들 사이에 제법 이름이 알려진 듯 연재 또래의 10대 청소년들이 벌써 줄을 늘어 뜨리고 있었다. 이날의 선택은 당연히 질보다는 양이 고려됐다.
막상 길거리에서 선 채로 1800원짜리 토스트를 받아드니 마땅히 편히 먹을 공간이 없었다.
연재와 발길을 옮긴 곳은 구 울산교 다리 위. 않을 자리도 넉넉했고, 주변 풍광이 제법 운치가 있었다. 토스트를 한 움큼 베어 문 연재는 다시 자신의 애기를 담담히 이어갔다.
"할머니와의 계속된 불화가 신체적 학대로 이어지면서, 결국 친어머니를 찾기로 결심했어요. 수소문 끝에 친어머니가 경북 울진에 새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어머니 친구로부터 듣게 됐어요."
“연재가 할머니의 학대로 너무 힘들어 친어머니와 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은 연재의 친 어머니는 다음 날 울산으로 내려와 연재를 울진으로 데려간다. 이때가 올해 4월초다.
“막상 울진으로 가니 떨어져 산 시간만큼 친 어머니와 마음의 거리가 있었어요 어머니 가족들과 그냥 ‘남도 아니고 혈육도 아닌’ 데면데면한 관계로 지냈어요."
그러나 친 어머니와의 울진 생활도 채 1달을 넘기지 못한다. 오히려 어른들의 편견의 희생양으로 마음의 상처만 깊어져 울산으로 내려왔다.
“울진에서 친 어머니 가족들과 지내는 동안 새 아버지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벌금을 내게되고 이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자, 이 모든 사고의 원인이 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고 집을 나갈 것을 요구했어요."
이렇게 연재와 친 어머니와의 짧은 만남은 서로 가슴에 생채기만 남긴 채 끝났다. 울산으로 돌아온 연재를 맞이한 것은 할머니의 더 큰 냉대였다.
“너가 우리를 먼저 떠났는데 왜 널 다시 키워야 되냐”는 할머니의 한마디는 연재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결국 연재는 가출 청소년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평범한 소시민들이 일생에 한번 겪을까말까한 연이은 불행에도 10대 초반의 연재가 아직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은 데는 종교적 신념이 크게 작용한 듯 보였다.
울진과 울산에서 모두 혈육으로부터 문전박대의 아픔을 겪으며 급기야 오갈데가 없어진 연재는 자신이 다니던 동구 새삶교회 전도사의 도움을 받아 같은 교회 권사가 운영하는 위탁가정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알게된 주변 지인들이 할머니를 설득해 위탁 가정 생활 이틀만에 할머니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현실은 더 나빠져 갔다.
'만추'의 밤은 깊어져 자정을 넘어서자 연재와 둘만 남은 태화강 다리위로 음습하는 칼바람은 살을 파고 들었다. 밤이 깊어지고 인적이 드물어지자, 밤을 지샐 마땅한 공간이 문득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가출 초보생의 처량함을 알아챈 연재는 CGV 건물을 가르켰다.
“영화관이 사람도 많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 가출 청소년들의 좋은 피난처가 되고 있어요."
영화 관람을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영화관에 마련된 오락실 등 편의시설이 가출 청소년들에게 최소 새벽 1~2시까지 추위와 지루함을 해결해 준다는게 연재의 설명이다.
그랬다. 추위에 떨던 가출 초보생에게 영화관은 다양한 놀거리와 안락한 쉴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지난 9월말 학교에서 단체로 ‘광해’란 영화를 봤는 데 처음에 야했고, 중간에는 우스웠고 마지막엔 너무 슬펐어요. 영화에 인생의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 있어 너무 좋았어요.”
연재는 어린나이에 연거푸 자신에게 찾아온 시련을 온 몸으로 부댓끼며 인생의 ‘희노애락’을 일찍 배운 듯 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같이 영화를 본 게 태어나 딱 한번 있었어요. 아이스에이지2란 영환데 그 때 같이 본 남동생을 성인이 되면 가장 먼저 찾고 싶어요"라며 가족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은연중에 토로했다.
영화관에서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에 언 몸이 스르르 녹아 내리자 이제는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연재는 영화관에서 잠을 청하기엔 아직 사람이 너무 많다며 태화강변으로 나가 바람을 쐴 것을 제안했다.
연재는 "지난 8월 가출했을 때 처음 만난 오빠들과 술을 마신 곳이다"고 수줍어했다.
이미 옆 테이블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1.5리터 피처 맥주와 과자 안주로 제법 그럴싸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곳은 청소년들이 어른들 눈치를 보지 않고 술을 마음껏 마실수 있는 ‘해방구‘로 제법 이름난 곳이란다.
“앞으로 간호사나 임상심리 상담사가 돼서 돈도 벌고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간호학이나 전문적인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리 진학을 점찍어 둔 고등학교도 있어요."
10대 청소년들이 술판을 파하고 떠나 버린 벤치에 남은 과자 찌꺼기를 먹으로 다가오는 길 잃은 고양이를 본 연재는 자신의 모습이 꼭 버려져 길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고양이 같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재는 현재의 시련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이미 설계하고 있었다. 어쩌면 연재의 가출도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편으로 불가피하게 선택한 나름의 고육책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연재는 가출 청소년이 곧 비행 청소년이라고 등식화하는 데 대한 반감이 컸다.
가출 청소년 동행 체험과 관련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진행된 교육에 따르면 연재는 '생존형' 가출의 전형적 케이스였다.
결국 혈육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살기위해 길거리로 뛰쳐 나온 것이다.
울산지역 가출 청소년들도 사연과 이유는 제각각 달라도 연재처럼 자의가 아닌 '타의'로 거리로 내 몰린 '생존형'이 가장 많다.
그만큼 청소년 가출 문제에 기성세대와 사회의 책임이 크다는 의미이다.
새벽 2시 30분. 이제는 낯설고 차디찬 회색 콘크리트 거리 어디에 몸을 누일 공간을 찾아야 했다.
연재는 지난 8월 가출 때 직접 발굴했다는 자신만의 잠자리 아지트로 데리고 갔다.
24시 영업을 하는 모 패스트푸드점이었다. 이 곳은 1·2층에서 영업을 하다 새벽에는 2층을 폐하고 화장실만 이용토록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잔돈까지 털어 햄버거 2개를 사 먹은 뒤 적당히 점원들의 눈치를 보다 화장실에 가는 척 2층으로 올라갔다. 5시쯤 새녁 장사를 위해 청소하러 올라간 점원들에게 들키기 전까지 꿀맛같은 단잠을 즐겼다.
청소년쉼터 시설 복귀 예정시간은 새벽 6시 30분. 청소년 쉼터 시설로 돌아오면서 모 병원에 들러 물도 마시고, 가볍게 세수도 했다.
“만약 어쩔수 없이 가출을 할 수 밖에 없는 극단적 상황이 닥치면 미리 담임 선생님이나 청소년 문제 전문가와 먼저 상담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가출은 안하는 게 가장 좋다.”
청소년쉼터로 복귀하면서 연재가 방황하는 위기의 또래 10대 청소년들에 해준 도움말이다.
한편 이날 가출 청소년 동행 체험 행사에는 울산시의회 서동욱 의장, 김성민 청소년쉼터 운영위원장, 울산매일신문 이연옥 부국장, 울산MBC 유희정 기자, 북구청소년자활지원관 배소영 팀장 등이 참여했다.
jourl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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