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산불 1년]기후 위기가 키운 '화약고'…진화숲길 '임도'의 딜레마 해법은
메마른 날씨와 소나무림 비중 높아 피해 '눈덩이'…임도 확충엔 찬반 팽팽
"사후 약방문 끝내야"…AI·ICT 융합 24시간 입체적 사전 예방 시스템 시급
- 박정현 기자
(울산=뉴스1) 박정현 기자 = 지난해 3월 울산 울주군 언양읍과 온양읍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기후변화의 여파로 산불은 이제 어쩌다 일어나는 이례적 재난이 아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상수'가 됐다. 잦아지고 대형화되는 산불의 위협에 맞서, 산불 예방과 대응 패러다임을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최근 산불이 과거에 비해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봄철 강수량 부족 등 기후변화의 여파로 산림 전체가 바짝 메마른 '불쏘시개'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1990년대 울산의 봄철 평균 강수량은 268㎜에 달했으나, 최근 10년(2016~2025년) 평균은 252㎜로 줄었다.
여기에 울산 지역 특유의 험준한 산세와 봄철 강풍이 더해지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지난해 온양 산불 때도 순간 최대 초속 10m의 강풍이 불면서, 불씨가 바람을 타고 수백 미터씩 날아다니며 순식간에 번지는 '비화' 현상이 발생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울산의 산림은 송진을 머금어 불에 취약한 소나무 등 침엽수림 비율이 높다. 산림청 임업통계연보(2020년 기준)에 따르면 울산 전체 산림면적 6만 7960㏊ 가운데 침엽수림은 2만 859㏊로 30.7%를 차지해, 전국 평균(25.1%)을 크게 웃돈다. 소나무는 활엽수보다 1.4배 더 뜨겁게 타고, 불이 지속되는 시간도 2.4배 더 길어 화마를 키우는 주범으로 꼽힌다.
안희영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재해예측분석센터장은 "기후 변화로 인해 여름에만 비가 집중되는 '극단적 기후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며 "특히 봄철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겹치는 것이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안 센터장은 또 "소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가지에 붙어 있어 지상에서 낙엽층을 태우던 불이 솔잎을 타고 나무 윗부분까지 번질 수 있다"며 "가지 전체에 불이 붙게 되면 산불이 확산해 빠르게 지나가는 '수관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산불 진화의 성패는 초기 골든타임(30분)에 달려있지만, 주력 장비인 산불 진화 헬기는 강풍이 불거나 야간에 뜰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헬기가 못 뜨면 지상 진화 인력과 고성능 산불진화차가 산속으로 직접 들어가 불길을 잡아야 하는데, 이때 '임도(숲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산림청과 울산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정상까지 3m 언양읍 화장산 산불은 정상까지 3m 폭의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소방차 진입이 수월했던 덕분에 발생 20여 시간 만에 주불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산세가 험하고 임도가 전무했던 온양읍 대운산 일대의 산불은 진화 인력과 장비의 접근이 지연되며 무려 닷새 동안이나 불길이 이어졌다.
한 임학계 관계자는 "임도는 산불 발생 시 방화선 역할을 함과 동시에 진화 인력의 진입로로 쓰이는 핵심 인프라"라며 "효율적인 산림 관리를 위해 반드시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임도 건설 등 인위적인 숲의 훼손이 오히려 숲 내부의 습도를 낮추고 바람의 통로를 만들어 산불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산불의 대부분은 입산자 등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데, 임도가 생기면 사람의 출입이 잦아져 화재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며 "임도 개설로 숲의 밀도가 낮아지면 볕과 바람이 쉽게 들어와 숲이 더 건조해지는 역효과가 발생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대형 산불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선 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을 결합한 과학적 '예방 중심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전문가들은 현재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 중인 'AI 무인 감시 카메라'를 전면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4시간 연기를 자동 감지해 즉각 알람을 울리는 지능형 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 아울러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 등 유관기관이 보유한 CCTV와 관측망을 하나로 연동하는 '통합 감시 플랫폼' 구축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기상청의 평지 기상 정보와 산림청의 산악 기상망, 산림 지형 및 수종 데이터를 결합한 '산불 위험 예보제'의 정확도를 현 70~80% 수준에서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야간 열화상 드론 투입을 확대해 24시간 빈틈없는 입체적 감시 체계를 완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남성현 전 산림청장(국민대 석좌교수)은 "AI 감시 시스템 등 디지털 전환에 드는 초기 예산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이는 조기 진화를 통해 수조 원대에 달하는 사회적·환경적 피해를 막아내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며 "이제 산불 방재는 불이 난 뒤에 끄는 '사후 대응'의 굴레를 벗어나,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사전 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niw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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