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아파트 화재로 숨진 70대 '저장 강박' 베트남전 유공자였다
성인 키 높이 쓰레기에 구조대원 진입 어려움 겪어
지자체 등 당국 관리·개입 한계…"관련 법 강화돼야"
- 박정현 기자
(울산=뉴스1) 박정현 기자 = 최근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가 화재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인은 생전에 집 안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저장 강박' 증세를 보였으며, 화재 당시에도 이 쓰레기가 구조대원들의 진입을 막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울산의 일부 기초자치단체는 이런 '저장 강박' 가구에 대한 통계가 없고, 현행법상 적극적인 개입도 어려워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울산 각 구·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지난 28일 해당 세대 현관엔 성인 남성 키 높이까지 쓰레기 더미가 쌓여 소방관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거실과 방을 가득 채운 폐기물로 구조대원들의 진입과 구조 활동에도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불이 난 집에는 20년 가까이 홀로 지내온 A 씨(70대)가 살고 있었다. 베트남전 참전 국가유공자였인 그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A 씨는 수년 전부터 저장 강박 증세를 보였다. A 씨가 비닐봉지에 각종 쓰레기를 담아 오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목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고위험군' 가구에 대한 지자체의 정확한 실태조사는 물론 개입 또한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울산의 일부 기초자치단체는 지역 내 저장 강박 의심 가구에 대한 통계를 갖고 있지 않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동 행정복지센터 등에 저장 강박 가구 신고가 접수되면 관리하지만, 저장 강박이라고 정의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이런 가구를 먼저 발굴하고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울산 중구, 동구, 북구는 저장 강박 의심 가구를 지원·관리하는 조례를 두고 있으나, 이번 사고가 발생한 남구를 포함해 울주군엔 관련 조례나 제도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실제 울산 남구청과 행정복지센터 측은 A 씨를 여러 차례 찾아가 쓰레기 등의 정리를 권유했으나, A 씨가 이를 강하게 거부하면서 개입이 무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시스템의 부재보다 '강제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행정복지센터마다 통합사례관리사가 배치돼 있고, 통장 등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위기 가구를 발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저장 강박 가구는 이웃과의 교류를 끊고 고립된 경우가 많아 집 안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장 강박은 정신적 문제와 얽혀있어 심리적 방어기제가 크다. 관리사가 방문해도 문도 안 열어주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이웃의 안전, 삶의 질도 중요하기 때문에 법이 강화되면 강제적 치료, 개입 등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niw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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