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붐비는 조선업 도시…돌아온 '호황기'에도 웃지 못하는 동구

마트 동남아 식재료 늘어나…조선업 인력충원에 외국인 급증
지자체 "외국인 쿼터 축소" 호소…"처우 개선 근본 대책"

22일 울산 동구의 한 마트에 줄콩, 채심 등 동남아시아 지역 채소들이 진열돼 있다.2025.12.22./뉴스1 ⓒ News1 김세은 기자

(울산=뉴스1) 김세은 기자 = "외국인들이 자주 와요. 외식보다는 집에서 현지 요리를 많이 해 먹으니까."

지난 22일 오후 5시께 찾은 울산 동구의 한 식자재 마트에선 히잡을 쓴 주민이 야채를 유심히 고르고 있었다.

신선식품 코너에는 줄콩, 채심, 코코넛, 용과 같이 일반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동남아시아 식재료들이 진열돼 있다.

이곳 마트 직원은 "인근에 현대중공업 기숙사가 있어 예전보다 외국인 손님 비중이 늘었다"며 "국적은 다양한 것 같다"고 전했다.

퇴근 시간대가 되자 작업복을 입은 외국인 서너명이 조선소 인근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컵라면 하나에 소주를 마시거나 계단에 걸터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외국인 주민 1만 명대를 넘은 울산 동구에서는 이미 일상이 된 풍경이다. HD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있는 동구는 지난 3년간 등록 외국인 수가 8000여 명 늘었다.

이처럼 동구에 외국인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한 건 조선업계의 부족한 인력을 외국인으로 대거 충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 불황기 당시 HD현대중공업 본사와 협력업체 직원 약 2만 5000명이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으로 일터를 떠났다. 이후 동구가 2016년부터 3년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지역 경제는 날이 갈수록 침체했다.

최근 조선업계가 다시 호황기로 들어서면서 외국인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외국인 음식점과 마트가 생겨나며 일부 활력이 생기고 있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불황기로 몇 년째 비어있던 방들이 요즘은 외국인 기숙사로 활용되고 있다"며 "초반엔 편견을 가지고 외국인은 안 받는 집주인이 있었는데 월세를 꼬박 내니까 좋게 생각하는 분도 많다"고 했다.

22일 울산 동구의 한 아파트 게시판에 영어 안내문이 붙어 있다.2025.12.22./뉴스1 ⓒ News1 김세은 기자

그러나 이날 뉴스1과 만난 대다수의 동구 주민은 조선업 호황을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역 상가 유리문마다 '임대' 안내문이 나붙었고, 지역 유일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무기한 휴업 중이다.

실제 동구의회 연구용역에 따르면, 동구 소상공인 절반 이상이 울산 내 다른 지역에 비해 동구의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전체 응답자 225명 가운데 '매우 침체'는 75명(33.3%), '침체'는 46명(20.4%)이었다.

남기환 울산 동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대다수의 외국인은 지역 정착을 목적으로 돈을 벌지 않다 보니 외국인 인구가 늘어도 지역 상권에 소비가 이어지진 않는다"며 "한식당을 이용하는 빈도도 낮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소 내 직급 체계가 바뀌면서 진급자 회식 자체가 줄었고, 코로나 이후로 회식 문화 자체가 바뀐 영향도 있다"며 "전체적인 지역 소비 패턴이 바뀌니 소상공인들은 경기가 안 좋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관할 지자체인 동구는 지난해 노사외국인지원과를 신설한 뒤 외국인 주민협의체 운영, 외국인 소식지 발간, 외국인 주민 반상회 등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선 내국인 고용 확대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은 전날 변광용 거제시장과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 인력 중심의 조선업 고용 구조를 내국인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가 내년도 조선업 전용 E-9 쿼터 폐지를 결정하면서 '외국인 쿼터 축소'로 이어질 거란 기대감도 있지만, 조선업 일자리의 근본적인 처우 개선 없이 막연하게 외국인을 축소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울산이주민센터 김현주 센터장은 "지역 경제 침체의 모든 원인이 외국인 때문이라는 시각은 부적절하다"며 "피부색이 다를 뿐이지 외국인도 세금을 내며 생활하는 '주민'이기 때문에 그들이 겪고 있는 열악한 처우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syk00012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