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서 LED 발판 게임 이용하던 초등생 '광자극'에 쓰러져
시교육청 '예민한 학생은 이용 자제를' 공문 발송
"광과민성 발작 잠재 위험…안전 가이드라인 필요"
- 조민주 기자
(울산=뉴스1) 조민주 기자 = 울산에서 LED 발판 게임을 이용하던 초등학생이 '광자극'에 의해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해 주의가 요구된다.
2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5월 초등학교 1학년생 A 군(6)은 부모와 함께 울산시 중구의 한 게임시설을 방문했다.
LED 라이트로 빛나는 발판 위에서 제한시간 안에 지정된 타일을 밟으며 점수를 획득하는 방식의 실내 액티비티 게임인데,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전국 20여 곳에서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게임의 주 이용층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A 군은 이 게임을 약 10분정도 플레이하던 중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이내 연달아 구토를 하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송된 A 군은 의료진으로부터 '광자극에 의한 경련' 소견을 받았다. 시설 내 화려한 조명과 빠르게 변하는 빛 때문에 쓰러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증상은 '광과민성 발작(증후군)'으로 알려져 있는데, 깜빡이는 불빛이나 섬광 등 특정 빛에 노출되면 발작을 일으키는 신경계 질환으로 뇌전증의 일종이다.
화려한 효과가 등장하는 영상 매체를 시청하거나 게임을 플레이할 때 많이 발생하고,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더 흔하게 발생한다.
A 군은 울산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가 산소포화도가 82%까지 떨어지는 등 상태가 위중해 양산부산대학교병원으로 다시 이송됐다.
A 군은 8시간 만에 의식을 되찾았으나 여전히 신경과와 소아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해당 게임은 색이 빠르게 전환되거나 깜빡거리며 움직이고, 내부 전체가 어두운 공간에서 조명 효과 중심으로 진행되는 조건 탓에 광자극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잠재적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 전문가는 이 게임에 대해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위험한 정도를 넘어 일반 성인들에게도 주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김덕수 한국뇌전증협회 사무처장은 "반복적으로 번쩍거리는 조명들은 광자극에 취약한 소아, 청소년들이나 뇌전증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발작이나 난독증 등 학습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광과민성 발작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며 "뇌전증 환자 뿐만 아니라 누가 광자극에 민감한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안내문 등을 통해 미리 고지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시각 자극이 강한 일부 콘텐츠에는 '광과민성 주의' 문구를 삽입해 이용자에게 사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021년 개봉한 디즈니 영화 '크루엘라'의 경우 강한 플래시 조명 장면이 포함돼 상영관 앞에 '영화 내 섬광 장면이 일부 포함돼 있어 빛에 예민한 고객께서는 관람에 유의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을 게시했다.
또 최근 비트박스 아카펠라 그룹 비트펠라 하우스의 신곡 'freaky monday'의 뮤직비디오에는 '빠르게 깜빡이는 빛, 강한 대비의 시각 효과가 포함되어 있으니 민감하신 분들은 시청에 주의해달라'는 안내 문구가 적혔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안내가 광과민성 발작의 위험성을 낮추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 군의 사고를 인지한 울산교육청은 관내 초·중·고등학교에 유사 사고 예방을 위한 공문을 보내 "광자극에 예민한 학생 등은 해당 시설 이용을 자제하도록 지도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문제는 해당 시설이 신종 놀이시설인 탓에 안전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유형으로 생겨나는 놀이활동 공간에서의 사고예방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관리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 군의 부모는 이 사고와 관련해 관계기관 등에 안전 대책 마련과 조사를 요구했으나 거의 모든 기관에서 '담당 업무가 아니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사고가 발생한 업체의 관할 행정청인 중구 관계자는 "현행법은 해당 (게임 시설)기종을 포괄하지 않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판단·검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해당 업장은 구청 신고 없이 세무서 등록 후 운영하는 업체이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 역시 "해당 업종은 별도의 허가 절차가 없는 신종 자유업종으로 보인다"며 "어린이놀이시설에는 해당하지 않아 직접적인 사고 조사나 과태료 부과 조치 등이 어렵다"고 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도 "해당 시설은 기타 체육시설로 게임물관리위원회 소관 업무가 아닌 지자체 소관업무로 보인다"며 책임을 넘겼다.
해당 업체가 어린이가 출입하는 시설임에도 관계 부처의 안전 규제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A 군의 부모는 "아무런 병력이 없던 아이가 광자극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데, 해당 시설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경고문 조차 없었다"며 "안전과 관련한 법이 빨리 보완돼 다른 아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A 군의 부모는 이 게임시설 업주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시설물의 안전을 확보하고 이용자의 위험성을 사전 점검, 관리·안내해야 할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A 군의 부모는 "광과민성 발작 유발 가능성이 있는 영상과 조명장치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사전 안내나 위험 경고 없이 운영해 사고가 발생했다"며 "업체 측에서 아이의 치료를 위한 CCTV 제공조차 거부해 형사고소를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고소건은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됐다.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업체의 귀책을 따질 근거가 없다고 봤다. 게임시설에 대한 안전 관련 법령이 없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업체 본사 측은 A 군 부모와 게임시설의 이용 자제를 권고한 울산교육청을 상대로 맞고소에 나섰다.
업체 측은 해당 게임 기기가 국립전파연구원으로부터 '적합 평가'를 받은 제품으로 위험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업체 측 관계자는 "1년 넘게 시설을 운영하면서 이런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광자극 유발 발작 관련 논문을 보면, 증상은 전체 인구 중 0.025%에만 발생하는 매우 드문 반응이다"고 주장했다.
또 "일반적인 LED 조명이나 단순 시각 콘텐츠에 의한 광자극 발작 유발 가능성은 극히 낮다"며 "게임 시설의 환경이 위험성이 있다고 알려진 시각 자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의료적·과학적 자료에 기초해 해당 게임 시설이 일반적인 아동에게 위험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했다.
업체 측은 A 군 사고 이후 시설 등에 '게임 시설 이용 시 민감한 사람은 주의해달라'는 안내문을 내걸었다.
한국뇌전증협회에 따르면 광과민성 발작을 예방하기 위해선 반짝거리는 광자극이 나타나는 영상 시청을 최대한 자제하고, 영상 시청 시 주위를 밝게하고 화면의 밝기는 낮추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는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을 통해 '깜빡이거나(flashing) 번쩍이는(blinking) 콘텐츠로 인해 발작을 일으키지 않도록 초당 3∼50회 주기로 깜빡이거나 번쩍이는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고 광과민성 발작 예방 수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보접근 약자가 웹 사이트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한 지침이다.
그러나 지상파, 케이블 방송이나 유튜브 등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영상 콘텐츠 등에서는 관련한 규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경우 프로그램 규정과 안전에 대한 조항(ITB)에서 광과민성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위험을 표기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일본방송협회(NHK)와 일본 민간방송연맹은 '애니메이션 등의 영상 연출 수법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영상이나 빛의 점멸은 1초에 3회를 넘겨 사용을 하지 않도록 한다.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 '틱톡'은 광과민성 발작을 예방하기 위해 과도한 빛 자극이 있는 동영상에 '건너뛰기' 기능을 도입하기도 했다.
minjum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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