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짧은 장마에 나무도 '시름시름'…환자 보러 달려갑니다

외래 병해충 개체 수 증가…기후위기 실감
서창훈 나무의사 "나무 '심기'에서 '가꾸기'로 전환해야"

울산나무병원 서창훈 나무의사가 15일 울산 남구의 한 근린 공원에서 수세활력진단기를 활용해 수목의 활력도를 측정하고 있다.2025.7.15./뉴스1 ⓒ News1 김세은 기자

(울산=뉴스1) 김세은 기자 = 아픈 사람을 치료하듯 병든 나무를 돌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나무의 병해를 진단·처방하는 국가 공인 전문가 '나무의사'다.

커다란 왕진 가방을 멘 울산나무병원 서창훈 나무의사는 15일 뉴스1과 함께 울산의 한 근린공원을 찾았다.

서 나무의사가 나무 기둥에 뾰족한 침을 꽂자 연결된 기기에 '76'이라는 숫자가 떴다. 일반 병원으로 치면 청진기 역할을 하는 '수세활력진단기'다. 이 장비는 나무 안에 있는 수분과 이온 함량을 측정해 건강 상태를 점수로 나타내준다.

그는 "75 이상이면 정상 수치"라며 "나무에 활력이 많을수록 진단 값이 올라가고, 50 이하면 고사 위기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15년간 산림업에 종사해 온 그는 3년 전 나무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나무병원을 차렸다. 나무의사 제도는 산림보호법 개정으로 2018년부터 공식 도입됐다.

울산나무병원 서창훈 나무의사가 15일 울산 남구의 한 근린 공원에서 토양진단기로 토양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2025.7.15./뉴스1 ⓒ News1 김세은 기자

최근에는 공원이나 가로수뿐만 아니라 학교, 아파트 단지 등에도 오래된 나무가 많아지며 나무 진료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특히 올여름 이른 폭염과 마른장마의 후폭풍으로 시름시름 앓는 도심 속 나무가 늘었다. 고온 건조한 날씨에 나무의 수세가 약해지면서다.

서 나무의사는 "6월부터 장마철인데 비가 많이 오지 않아 고온 건조해졌다. 특히 가로수처럼 공간이 협소하고 토양이 안 좋은 곳에서는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미국흰불나방이나 소나무재선충과 같은 외래 병해충에 대한 의뢰가 늘어나면서 기후 위기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 나무의사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이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올여름이 유독 더웠던 탓에 하반기가 되면 병해충 피해가 더욱 극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잎을 갉아 먹어 나무를 쇠약하게 만든다. 산림청은 지난 10일 미국흰불나방 발생 예보를 '주의' 단계로 상향한 바 있다.

울산의 한 고등학교 벚나무에 미국흰불나방 애벌레가 발생한 모습.(울산나무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뉴스1

그는 "가을이 되기도 전에 낙엽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전형적인 미국흰불나방으로 인한 피해"라며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고 말지만 방제를 제때 하지 않으면 주변으로 빠르게 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 나무의사는 앞으로 빨라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기존의 '나무 심기' 정책에서 '나무 가꾸기'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나무재선충의 경우 현재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어 예산만 밑 빠진 독처럼 나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한 나무라도 예방하고 지킬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현재 전국에는 1539명의 나무의사가 활동 중이다. 울산에는 15여개의 나무병원이 있다.

syk00012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