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울산 아파트 방화 살인…부인과 내연남의 치밀한 '음모'
택시 운전사와 승객으로 만나 내연관계 발전…보험 살인 기도 의혹
경찰, 아파트 주차 차량 수십대 블랙박스 뒤져 범행 예행연습 발견
- 남미경 기자
(울산=뉴스1) 남미경 기자 = 지난 8월 울산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 사망사건은 아내와 내연남이 치밀하게 꾸민 '방화 살인사건'으로 드러났다.
지난 8월 23일 0시께 울산 동구의 한 아파트에 불이 나 안방에서 잠을 자던 박모씨(53)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경찰은 옷가지와 가재도구 일부만이 불에 탄 점을 미뤄 전기 누전이나 담배꽁초에 의한 실화로 판단했다.
하지만 국과수 감식결과 담배꽁초는 발견되지 않았고 전기 누전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둔 수사가 진행됐다.
한동안 진전이 앖었다. 아파트 주차장 CCTV에 외부 침입의 흔적은 없었고, 아내 한모씨(53) 또한 사고 당시 집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끈질긴 수사로 아내 한씨와 내연남인 최모씨(51)가 박씨를 죽이기로 공모하고 이날 방화한 다음 옷가지를 태우는 수법을 써 화재 사망사건으로 위장한 사실을 알아냈다.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졌던 자동차들의 블랙박스가 '일등공신'이었다.
두 사람은 사고가 나기 한 달 전 박씨를 죽이기로 공모했다. 한씨는 자신의 핸드폰 카메라로 아파트 주차장의 CCTV 사각지대를 찍어 최씨와 공유했다.
방화 당일. 두 사람은 함께 차를 타고 한씨가 사는 아파트를 찾았다. 한씨는 CCTV 사각지대인 1층 현관문에 차를 세웠고, 최씨는 트렁크를 이용해 차에서 내렸다. 이들은 한씨 집인 1층과 떨어진 윗층 복도에서 귀가하는 박씨를 기다렸다. 그리고 술에 취한 박씨가 집에 들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옷가지에 불을 붙였다.
한씨는 지인의 개업식에 참석차 외출한다며 주변 사람에 알려 알리바이를 만들어둔 상태였다. 최씨는 범행후 한씨가 집을 나간 뒤 1시간 가량을 더 머무른 다음 전기 차단기를 내리고 도망쳤다.
경찰은 "한씨의 집에 아파트 CCTV 셋톱박스가 있었기 때문에 전기 차단기를 내려 CCTV 전원을 끄려고 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한씨와 최씨는 결국 살인 혐의로 구속돼 1심 재판부에 넘겨졌다.
◇피고인들 범행 현장 동행에도 CCTV 찍히지 않아…어떻게 가능했나.
경찰이 수사 초기 최씨와 한씨의 범행을 밝혀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최씨가 아파트에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씨가 자신의 차량을 타고 아파트에 들어가는 장면만 CCTV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최씨는 CCTV를 피해 어떻게 집안으로 들어가 한씨와 함께 방화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일까.
사건 당일 한씨가 차를 타고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최씨는 차 뒷자석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파트 주변 방범용 CCTV에 찍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씨는 미리 확인해 둔 CCTV 사각지대에 차를 주차했고 최씨는 차 트렁크로 빠져나와 아파트 현관에 들어설 수 있었다.
CCTV 사각지대는 한씨의 1층 집으로 통하는 현관과 주변 담벼락. 한씨는 차 트렁크 부분이 찍히지 않도록 교묘히 주차했고, 최씨는 이 때문에 CCTV에 찍히지 않았다..
경찰은 "이들이 CCTV 사각지대를 미리 파악하고 사전에 트렁크가 찍히지 않도록 모의 주행을 하는 등 철저히 범행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아파트에 주차된 차량 수십대의 블랙박스를 뒤져 이들이 사건 하루 전날에도 같은 방법으로 모의 주행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최씨가 범행 직후 옷을 갈아입고 택시와 버스 등을 여러차례 갈아타는 등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왔다고 덧붙였다.
◇피고인 "폭행하려고" vs 검찰 "살인 계획"…치열한 법적 공방
살인 혐의로 기소된 최씨와 한씨의 1심 재판이 지난 9일 울산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찰은 이날 "피고인들이 사고 한 달 전부터 살인을 공모하고 치밀한 계획하에 방화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씨는 "겁을 주기 위해 몇 대 때리자고 한씨와 공모한 사실은 있지만 살인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며 "집에 불은 지른 일은 단독 범행이었다"고 진술했다.
한씨는 "남편이 미워 폭행에 대한 공모만 했다. 최씨가 불을 낸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며 검찰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피고인들이 폭행을 계획했다면 아파트 CCTV 사각지대를 피해 몸을 숨길 이유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날 검찰은 이들이 살인을 공모했다는 여러 정황과 증거를 제시했다.
검찰은 범행 사흘 전 대포폰을 구한 최씨가 범행 전후 수시로 한씨와 통화한 내역이 있는 점, 한씨에게 대포폰을 구하라고 시킨 점, 범행 후 한씨가 최씨에게 500만원을 송금했는데 둘 다 타인 명의의 계좌를 이용한 점을 미뤄 한씨가 살인의 대가로 돈을 지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한씨가 남편 박씨에 대한 보험을 여러 개 가입했으며, 보험수령액이 5억원 가량에 이른다는 점을 최씨가 범행 전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피고인 경찰 조사 "식물인간 만들려고" 진술…법정서 번복, 왜?
최씨와 한씨는 2002년 4월 광주에서 택시기사와 승객으로 처음 만났고, 이후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다 한씨가 2008년 울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헤어졌고, 이 둘은 2013년 SNS를 통해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한 달 전 광주에서 한씨를 만났고 한씨가 남편이 미워 겁을 주자고 했다. 그날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리자는 말들이 오고갔다"고 진술했었다.
하지만 최씨는 이날 법정에서 이같은 진술을 번복했다.
최씨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진술한 것 같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이날 법정에 참관한 숨진 박씨의 유족들은 "최씨의 단독 범행인 것처럼 사건을 마무리하고 이후 한씨가 풀려나면 최씨에게 대가성으로 보험금 일부를 주지 않겠냐"고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에 대한 1심 재판은 오는 23일 오후 5시 법정 301호에서 다시 열리며, 한씨에 대한 증인 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nm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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