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의 반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영화 <위플래쉬>의 마지막 부분에서 밴드 지휘자인 플레처(J.K.시몬스)가 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뒤 오랜만에 드럼연주에 나서게 된 앤드류(마일즈 텔러)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핫바지로 보여? 니가 다 불었잖아."

플레처는 한 때 앤드류를 가르쳤던 교수였다. 하지만 그는 경쟁위주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교수법이 문제가 돼 교직에서 쫓겨났다.

앤드류도 그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었고, 앤드류의 증언으로 인해 플레처는 교직에서 쫓겨나게 됐다.

하지만 수 개 월 뒤 앤드류는 우연히 한 재즈 카페에서 플레처를 다시 만나게 됐고, 과거 가혹한 교수법의 이유가 사실 학생들의 한계돌파를 위한 것이었다는 말을 그로부터 듣게 된다.

다시 말해 제2의 찰리 파커나 루이 암스트롱을 만들기 위해 그랬다는 것. 플레처가 앤드류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말이 뭔지 알아? 그만하면 잘했어야"

사실 플레처 교수의 실력은 존경하면서도 그 교수법이 소름끼치게 싫었던 앤드류가 수 개 월 뒤 우연히 만난 플레처의 제안에 따라 카네기홀 무대에서 드럼스틱을 다시 잡게 된 건 그날 그 재즈 카페에서 잠시 듣게 된 그의 진심 때문이었다.

그토록 가혹했던 플레처의 교수법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던 것. 그것은 드럼연주자로 최고가 되려 했던 앤드류의 욕망과 일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때문에 앤드류는 카네기홀 무대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플레처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한 플레처는 앤드류를 향해 위와 같은 '핫바지' 발언을 쏟아내고 만다. 게다가 플레처는 재즈 카페에서 만났을 때의 예고와 달리 앤드류가 전혀 연주해본 적이 없는 팀 시모닉의 신곡 '업스윙윙'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물론 앤드류는 연주를 망치게 되고 그를 향해 플레처는 통쾌한 듯 "아무래도 넌 기회가 없나보다"라고 비꼰다.

하지만 그게 자극제가 된 앤드류는 복수심에 다시 무대로 오르게 되고 그 동안 수도 없이 연습했던 '카라반'과 '위플래쉬'를 신들린 듯 연주하며 마침내 한계를 돌파하게 된다.

저예산 독립영화지만 흡입력 있는 플롯으로 국내에서 선전을 거듭하고 있는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가 일상에서도 논쟁의 중심에 서고 있다.

영화 자체도 재미는 있는데 뒤끝이 개운하지 못한 불편함으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논쟁의 중심에는 플레처의 반전 '핫바지'발언이 자리하고 있다.

도대체 플레처는 왜 카네기홀 무대에서 드럼스틱을 다시 잡은 앤드류를 향해 갑자기 돌변해 그런 발언을 했을까.

며칠 전 재즈 카페에서 진심 어리게 들렸던 자신의 지도 철학은 뭐였을까.

과연 플레처는 자신을 교수직에서 쫓겨나게 했던 앤드류에게 복수를 한 것일까, 아니면 앤드류가 한계를 돌파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준 것일까.

영화 내적으로는 전자와 후자의 근거를 모두 찾을 수 있다. 먼저 전자는 복수심에 무대에 다시 오른 앤드류를 향한 플레처의 한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지휘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복수심에 먼저 '카라반' 연주를 시작한 앤드류에게 다가가 플레처는 이렇게 엄포한다.

"네 눈깔을 뽑아버리겠어!"

분명 플레처의 표정과 대사는 분노로 넘쳐 있었다. 앞서 그의 핫바지 발언이 앤드류의 한계 돌파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러한 표정과 대사는 굳이 필요 없는 부분 아닌가.

후자의 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며칠 전 재즈 카페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오랜 만에 만난 앤드류에게 플레처는 온화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앞서 앤드류는 플레처의 가혹한 교수법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던진다.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 있잖아요. 너무 멀리 가서 제2의 찰리 파커가 좌절하게 되면 어쩌려구요?"

앤드류의 그러한 지적에 대해 플레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냐, 제2의 찰리 파커라면 절대로 포기 안 해. 난 사실 '찰리 파커'를 키우지 못했다. 시도는 했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했다고, 난 내가 한 시도에 대해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다."

결과론적으로 플레처는 앤드류를 제2의 찰리 파커가 될 만한 재목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다시 말해 그렇게 해도 앤드류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영화 내적으로는 어느 쪽이든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영화 밖으로 눈을 돌려 보면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 그 키(Key)는 영화를 만든 '다미엔 차젤레' 감독이 갖고 있고 그는 그 장면과 관련해 미국 영화 잡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플레처 교수가 두 개의 아젠다를 조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플레처 교수가 예상하는 하나의 아젠다는 앤드류가 슬그머니 도망치고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정이고, 이 경우 앤드류는 찰리 파커가 결코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의 아젠다는 앤드류가 무대에 돌아와 한계를 돌파하게 된다는 것이다. 괴상한 방법으로 <위플래쉬>의 결말은 플레처에게 Win-Win이다. 나는 그가 그의 지휘 커리어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플레처 교수는 하나의 찰리 파커를 찾기 위해 자신을 포함해 어느 누구든, 어떤 것이든 기꺼이 희생시키려 할 것이다. <위플래쉬>의 결말이 재밌는 점은 일견 앤드류가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앤드류는 플레처의 줄 위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하기도 하다."

역시나 모호하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위플래쉬>의 결말 이후의 스토리에 대해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플레처와 앤드류는 영화 결말에서 위대한 순간을 공유했지만 그것은 확실히 잠깐 동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상처로 인한 상당한 피해가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플레처는 항상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할 것이고, 앤드류는 슬픈 빈껍데기의 사람이 되어서 마약과다복용으로 30대에 죽을 것이다. 나는 둘의 관계의 전개에 대해 굉장히 어두운 견해를 갖고 있다."

이 역시 우리가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 명확한 답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결국 열린 결말이라 뜻.

따라서 플레처의 핫바지 발언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관객들 개개인의 몫이 아닐까.

다만 만약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플레처의 핫바지 발언에 담겨진 의중은 '복합적'이라고 생각한다. 즉, 복수심과 자극이라는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고 본다. 복수심이 표면적이지만 자극에 대한 의도도 미필적 고의 수준으로 마음 깊숙한 곳에 잠재해 있었을 거라고 본다. 인간의 마음을 하나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것은 매우 복잡다단하고 시시각각 변한다. 마음에도 계단이 있다. 인간은 사랑하기 때문에 증오한다. 또 복수심이 순식간에 동정심으로 바뀌기도 한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명심하시길. 우주가 빛과 어둠이 공존하듯 인간의 마음도 언제나 선과 악이 공존한다."

lucas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