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형량 기준 손질 목소리…"처벌불원 없애야"

성평등부, 판·검사·학계 등 참여 양형기준 포럼 개최
"권고 형량 재설정·행위자 사정 따른 감형 제한해야"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성범죄 재판에서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법원에 돈을 맡겼다는 이유, 또는 처음 적발된 범죄라는 이유로 형이 지나치게 낮아지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형을 깎아주는 관행을 없애고 성범죄에 적용되는 형량 기준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도 나왔다.

성평등가족부는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판사·검사·변호사와 학계·피해지원 현장 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폭력 이후, 법원의 시간-젠더폭력 사건의 양형기준과 판결을 들여다보다'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법원의 젠더폭력 사건 양형기준 적용 실태 및 개선방안'을 주제로 최근 판결 사례를 분석해 발표했다.

결론적으로 한 교수는 성범죄 양형 과정에서 처벌불원과 합의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가해자에게 유리한 사정이 폭넓게 고려되는 반면 피해 정도와 피해자의 취약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처벌불원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는 것이다. 법원은 현재 성범죄 피고인의 형량을 정할 때 이를 형을 낮춰줄 수 있는 사유로 보고 있다.

성범죄는 2013년 친고죄가 폐지되면서 피해자 고소가 없어도 처벌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지가 가해자의 형량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한 교수 지적이다.

성평등부에 따르면 2021~2023년 성범죄 양형기준 준수율은 87.6%, 디지털성범죄는 79.9%로 같은 기간 전체 범죄군 평균인 91.1%보다 각각 3.5%포인트, 11.2%포인트 낮았다.

실제 분석 사례에서는 합의와 처벌불원이 실제 형량을 바꾼 경우가 확인됐다.

술과 약물로 저항할 수 없는 여성을 성폭행한 한 피고인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피해자에게 45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뒤 피해자가 법원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자 재판부는 이를 감형에 유리한 사정으로 반영했다.

공탁 제도도 현행 젠더폭력 양형기준의 문제로 지목됐다.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지 못하거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피해자를 위해 일정 금액을 법원에 맡기는 절차다.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에는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회복(공탁 포함)'을 감경요소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피해자가 실제로 합의하지 않아도 피고인이 돈을 법원에 맡긴 사실을 피해회복 노력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성범죄 양형기준은 '상당한 피해 회복'을 감경요소로 규정하고 있지만 디지털성범죄처럼 공탁을 별도로 명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실제 재판에서는 공탁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사정으로 고려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교수 분석에 따르면 모 강간미수 사건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해 500만 원을 공탁했다. 피해자는 여전히 처벌을 원하는 입장이었지만 재판부는 공탁 사실 자체를 피고인이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한 정황 중 하나로 참작했다.

한 교수는 이같은 재판 현장의 관행을 고려해 성범죄와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에서 '처벌불원'을 삭제하고 디지털성범죄 감경요소에 포함된 '공탁 포함' 규정도 없애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범죄의 중대성에 맞게 권고 형량범위를 재설정하고 직업이나 가족 부양 등 범행과 직접 관련 없는 행위자 사정이 감형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양형기준에서는 '형사처벌 전력 없음(초범)'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촬영물이 '유포·반포되지 않음'이나 범행에 '영리 목적·경제적 이득이 없음'을 별도의 감형 사유처럼 해석하는 관행도 배제하고 '인적 신뢰관계 이용'에는 교제·배우자 등 친밀관계를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동종 전력이 있을 경우 집행유예 선고 배제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고 법원 내 양형기준 교육·모니터링과 성인지 감수성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b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