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조용한 광장의 쓸모

신건웅 사회정책부 차장
신건웅 사회정책부 차장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매일 서울시청으로 출근하는 저는 서울광장 앞을 지나는 일이 하나의 작은 즐거움입니다. 푸른 잔디 위에서 책 읽는 사람들, 한쪽에 소담하게 피어있는 꽃을 보고 있으면 바쁘게 움직이던 발걸음도 잠시 늦춰집니다. 팍팍한 하루 속에서 마주하는 뜻밖의 여유입니다.

그래서인지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야외 도서관도, 광화문광장에서 펼쳐진 공연도 불편하기보다 반갑게 느껴집니다. 광장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였다가 머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어느새 광장은 '지나치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는 공간'이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광장은 늘 시대에 따라 다른 쓸모를 가져왔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이곳은 거대한 응원장이었습니다. 낯선 사람과 어깨를 맞대고 함께 뛰고, 함께 울었습니다. 2008년 여름에는 촛불이 광장을 가득 메웠고, 2016년 겨울에는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이 이어졌습니다. 모두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모인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날의 광장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됐고, 역사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지금, 광장은 다시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들어서고, 봄이면 야외 도서관이 열립니다.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잠시 쉬는 공간이 됐습니다.

일부에서는 달라진 광장의 모습을 경계합니다. 점점 '관리되는 공간'이 되면서, 불편한 목소리가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입니다. 광장이 축제와 여가로만 채워질 때, 시민의 저항과 발언이 자연스럽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줄어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광장이 쉬는 법을 배웠다고 해서, 말하는 법을 잊은 것은 아닙니다. 역사 속 광장은 언제나 일상과 저항 사이를 오갔습니다. 평온한 날에도 사람들이 모이고 머물렀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광장은 다시 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광장의 저력은 분노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그 공간을 매일 걷고, 앉고, 숨 쉬는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나옵니다.

광장이 싸우는 법만 알아야 한다면, 시민이 광장을 찾는 이유가 분노뿐이라면, 그 사회는 아직 광장을 절반밖에 쓸 줄 모르는 셈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펼치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연인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그 평범한 시간도 광장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그래야 목소리도 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광장으로 향합니다. 저는 조용한 광장의 쓸모가 싫지 않습니다. 분노의 함성이 잦아든 자리, 그 고요한 일상까지 품어낼 때 광장은 비로소 시민의 것이 됩니다. 내일 아침도 광장이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