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흙수저 부부가 아이 낳으면 죄인가요?"
- 권혜정 기자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흙수저 부부가 아이 낳으면 죄인가요?"
최근 인터넷에서 본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제목이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30대 부부, 소위 말하는 '흙수저'라 아이는 처음부터 포기했는데, 최근 들어 자꾸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고 했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댓글들이었다. 어렸을 적 '영유(영어유치원)', 크면서 철마다 여행, 값비싼 학원, 결혼할 때 '집 한 채' 등 아이에게 충분한 금전적·시간적 지원을 해줄 수 없다면 '낳을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내용들이 부지기수였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내용의 글들이 잇따라 달려도 그 누구 하나 '반대' 버튼을 누르지 않는, 어느새 돈이 없으면 아이를 낳을 때 "죄인가요?"를 물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일까 씁쓸함이 몰아쳤다.
둘째 아이를 낳은 지인이 최근 2년간의 육아휴직을 끝낸 뒤 어렵사리 복직했다. 그녀가 복직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 돈 때문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아이 둘을 키우려면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복직 전날 말했다. "나, 정말 아이 잘 키우고 살림 잘 할 수 있는데 "라고. 그녀는 복직을 했고, 월급을 받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첫째 아이는 매일 5시까지 학교에 남는다.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 하원하는 아이가 됐다.
또 다른 지인은 10년 이상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택했다. 워킹맘으로 7년 이상을 살며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버거움이 턱끝까지 차올랐다고 했다. '이모님'을 구하면 그만두고, 구하면 그만두고를 십수번 반복하며 버텼지만 결국 그녀가 졌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사표'를 낸 그녀는 말했다. "이러려고 그렇게 공부하고, 치열한 취업전쟁에 뛰어들었던 게 아닌데 "라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지금,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출산 지원금이 지방에 비해 비교적 적은 서울에서도 임신하면 바우처로 100만원, 교통비로 70만 원을 준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후조리경비로 또 100만 원을 주고, '부모급여'로 1년 동안 매달 100만 원, 또 1년 동안 50만 원을 준다. 이밖에도 출산 장려 정책은 수없이 많다. 이 노력의 결과일까, 올해 서울의 출산율은 5개월 연속 증가했다. 이는 12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기록은 '반짝'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아이는 부모급여 지급이 끝나는 24개월이 지나도 계속 크고, 아이에게 필요한 돈은 점차 늘어난다. 필요한 돈 만큼,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의 절대적 시간도 늘어난다. 복직한 지인과 사표를 낸 지인은 모두 말했다. "한 달에 100만 원 준다고, 아이를 낳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라고.
지금의 출산율 반등이 반짝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아이를 낳게 하는 것에서 나아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출산 장려 정책'에서 '육아 장려 정책'으로 넘어가 '흙수저 부부'도 걱정 없이 아이를 낳는 것은 물론, 걱정 없이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돈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복직을 택하거나,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억지로 사표를 내야 하는 상황 모두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가 할 다음 스텝이다.
jung907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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