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첫 벚꽃 명소는 '수유동'…조선통신사, 수백 그루 들여와
서울역사박물관, '수유동: 느린 도시, 살아있는 공동체' 발간
- 한지명 기자
(서울=뉴스1) 한지명 기자 = 서울역사박물관은 수유동의 150년을 미시적으로 추적한 '수유동: 느린 도시, 살아있는 공동체' 보고서를 발간하였다고 26일 밝혔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은 조선통신사가 심은 벚꽃부터 민주화운동의 산실인 아카데미하우스, 풀뿌리 주민 활동까지 겹겹의 시간을 품은 공간이다.
1865년(고종 2년)부터 등장한 '수유리'라는 지명은 1950년 '수유동'으로 개편되었으나, 4·19민주묘지, 아카데미하우스 등 상징적 장소와 결합되며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유리'라는 고유명사처럼 통용되고 있다.
보고서에는 "벚꽃의 원조는 수유동, 여의도가 아니었다"며 수유동이 서울의 첫 벚꽃 명소였음을 조명한다.
조선 후기 문신 홍양호가 조선통신사를 통해 1700년대 일본산 벚꽃 묘목(소메이요시노)을 들여와 우이동과 수유동 일대에 수백 그루를 심었고, 이는 창경궁(당시 창경원)이나 여의도보다 앞서 벚꽃 군락이 형성된 사례로 기록된다. 수도폭포와 구천폭포 등 빼어난 자연환경 덕분에 한때 '숨겨진 명승지'로 불렸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성 근교의 대표 벚꽃 명소로도 이름을 알렸다.
수유동 산 9-1번지에 위치한 국립4·19민주묘지는 1960년 4·19혁명의 희생자 199위를 모신 곳이다. 남산에 조성될 뻔했으나, 여러 논의 끝에 1963년 9월 수유동에 약 3000평 규모로 조성됐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정신이 깃든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아카데미하우스는 한국 크리스챤아카데미가 독일 자본으로 건립한 본부 건물이다. 대지 6000평에 회의실, 호텔, 식당 등을 갖춘 복합공간이다.
1970~1980년대에는 여성운동, 통일 논의 등 민주화 담론이 활발히 전개된 장소였다. 1988년에는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야당 지도자들이 이곳에 모여 13대 국회 운영 방향과 정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수유동은 대규모 재개발 대신, 주민들이 마을 안에서부터 삶의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대안적 도시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고층 아파트보다 낮은 다세대주택, 오래된 전통시장, 주민이 직접 만든 커뮤니티 공간이 공존하며, 도시의 '속도'가 아닌 '관계'로 이어지는 일상이 실천되고 있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기록은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도구"라며 "수유동의 변화는 서울 곳곳에서 진행 중인 생활 문화 실천의 좋은 본보기"라고 전했다.
hj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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