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득세쇼크]지자체, "정부는 지방이 그렇게 만만해?"
사전 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취득세 인하' 방침을 두고 정부가 '슈퍼 갑(甲)' 행세를 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하는 대표적 '갑질'은 지자체의 재원인 '지방세'를 대상으로 한다.
정부는 국민이 내는 세금 중 80%를 가져간다. 지방세율은 20% 정도다. 온전히 지방세로 분류된 세금인 취득세율도 정부가 좌지우지한다.
정부는 22일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취득세 인하 방침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예상되는 지자체의 재정 감소액이 최대 7000억원에 이른다.
뉴스1 취재팀이 전국의 지자체 담당자에게 '취득세 인하' 방침에 대해 묻자 대부분 지자체를 '만만하게' 본 처사라며 울분을 토했다.
정부가 지방세를 정책 수단으로 삼아 '손 안대고 코 풀려고 한다'는 게 지자체 대부분의 입장이다.
정부가 '취득세 영구 인하' 방침을 발표한지 하루 만에 전국 10곳의 시·도지사가 한자리에 모여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23일 취득세 인하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시·도세인 취득세 인하 논의과정에서 시도지사를 배제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이날 "다른 것으로 똑같이 메워 줄 테니 가만히 계세요라는 식은 옳지 않다"며 "박근혜 정부는 지방자치 정신에 입각해 지방정부와 합리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취득세 영구인하 시 6200억원의 손실을 떠안게 될 서울시는 '만만한 게 지방'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시 기획조정실 관계자는 "국세인 양도소득세 인하가 부동산 거래 활성화에는 훨씬 효율적임에도 유독 지방세인 취득세를 건드리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지방에 교부세를 내려 보내는 명목으로 지자체의 돈줄을 틀어쥐고 '까불지 말고 따라와' 하는 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정자립도가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자체가 244개 가운데 절반 이상으로 이들 지자체는 공무원 월급도 충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지자체들은 중앙정부로부터 교부세를 받아 지방 살림을 꾸린다. 그러니 불만이 있어도 정부에 큰 소리를 못내는 게 현실이다.
정부에서 교부세를 줄이면 당장 지방재정이 심각한 타격을 입기 때문에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군소리 말고 정부 방침대로 따라가야 한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라는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지방세목을 지렛대로 삼아 만만한 지자체만 쥐어짜는 방식에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경남도 관계자는 "취득세 인하는 전형적인 선심성 행정"이라며 "선심은 국가가 쓰고 재정부담은 지자체에 떠넘기는 일방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슈퍼갑'이라 끌려갈 수밖에 없다"며 "교부세를 받아야 살 수 있는 '을'인 지방정부 입장에선 큰 목소리를 내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멀쩡한 지방재원을 축소시키고 대신 중앙정부에서 주는 교부세나 보조금에 의존하라는 것은 중앙집권적 발상이며 지방자치의 후퇴라는 것이 지자체 대부분의 입장이다.
부산시 세정담당관실 관계자는 "정부가 명확한 지방 세수보전 방안을 내놓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지금 모양새는 이해하기 힘들다"며 "그간 정부는 지방소비세율을 10~20% 인상하겠다고 수차례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약속해놓고 취득세 하나만 달랑 손대는 것은 지자체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시 관계자는 "구체적인 재정확보 방안 없이 공약을 남발해놓고 은근슬쩍 그 책임을 지방에 전가하는 것은 아직도 지자체를 중앙정부에 예속된 것으로 보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지자체의 재원보전 대책 없이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을 펴는 것은 생색은 정부가 내고 재주는 지자체가 넘는 격"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재영 대전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취임 첫 해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 조급한 마음도 들겠지만 성과에 집착한 단기적인 정책보다는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경제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다"며 "세수를 가지고 부동산 활성화 방안을 찾을 것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대책을 찾는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송부용 한국지역경제학회장은 "취득세 영구인하는 중앙정부가 지방분권을 외면한 처사"라며 "세율인하로 발생하는 재정 부족분을 보전해 줄 경우 그만큼 다른 지방교부세가 줄어들게 돼 지방재정이 악화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장은지·한종수·차윤주(서울)·박동욱·박광석(부산·경남)·김영재(충북)·이승석(전북)·심영석(대전·충남)·신효재(강원)·김한식(광주·전남)·이재춘·김대벽(대구·경북)·이상민(제주)·이상길(울산)·송용환(경기)·주영민(인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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