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옥천의 교통로와 역원제' 재조명 학술세미나 열려
옥천향토사연구회 주최 역사적 가치와 공간적 재현 등 논의
- 장인수 기자
(옥천=뉴스1) 장인수 기자 = 충북 옥천은 '국토의 중심'으로 '삼국시대부터 요충지'였다. 지금으로 얘기하면 사통팔달의 고장 또는 전국의 중심지로 어디를 가도 두세 시간이면 갈 수 있다.
옥천군 청성면 장연리가 대한민국의 정중앙에 위치한 배꼽마을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대한민국의 중심지 옥천이라는 말도 잘 어울리는 수사다.
충북 옥천향토사연구회가 11일 '옥천의 역원제 조사 연구'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세미나는 과거 교통과 통신의 핵심 요충지 역할을 했던 옥천 지역의 역(驛)과 원(院) 제도를 학술적으로 깊이 있게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했다.
세미나에서 3개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엄기석 공주교육대학교 교수와 양정현 순천대학교 교수, 이안재 옥천향토전시관장이 주제 발표를 했다.
엄 교수는 "금강은 곁을 흐르면서도 상시로 배가 오르내리는 물길은 아니어서 옥천에서 강은 물자를 실어 내는 통로보다 건너야 할 대상에 가까웠다"며 "세 곳의 나루와 겨울에 놓았다가 여름에 걷는 다리가 그 사정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설들이 놓인 자리에 다섯 개의 장이 서서 닷새의 주기를 빠짐없이 채웠고, 19세기 전반에는 인접 지역의 지선 분화와 함께 장시가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이 관장은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487년 신라 소지왕때 처음 시작돼 고려때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됐고, 옥천군은 고려때부터 설치되기 시작해 조선시대까지 이르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청산을 포함한 옥천군내에는 5개의 역과 아울러 10개의 원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역은 공문서 전달과 마필교체, 물자수송을 맡은 국가 교통 통통신기관이고, 원은 관리와 공무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한 공공 숙박시설을 말한다.
주제발표에 이어 임준묵 한밭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아 종합토론을 진행했다. 토론에는 이진영 전 옥천향토사연구회장, 신동호 전 한남대학교 교수, 이정림 회원이 참여해 옥천의 역원제와 교통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향후 연구와 보존 방향을 제시했다.
황건하 옥천향토사연구회장은 "조선시대 주요 교통로였던 옥천의 역사적 위상을 역원제를 통해 다시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였다"며 "옥천의 역·원 유적지 현장 답사를 진행하고 연구 성과를 지속 축적해 지역 향토사 보존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jis490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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