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유배길을 가다]②신라~조선 '500년 눈물의 고개' 제천 배재

930년대 신라 마지막 경순왕 '항복의 고갯길'
1450년대 조선 어린왕 단종의 '청령포 유배길'

편집자주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 신드롬이 계속되고 있다. 단종의 유배지인 강원 영월은 영화 개봉 이후 핫한 지역'으로 떠올랐고, 관련 있는 전국 자치단체도 '왕사남 신드롬'에 가세하는 분위기다. 뉴스1은 제천의 단종 유배길을 따라 걸었다. 단종과 제천이 얽힌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 도로 옆에 있는 신라 경순왕 돌탑.2026.3.8/뉴스1 손도언 기자

(제천=뉴스1) 손도언 기자 = 충북 제천시 백운면 '배재'는 5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이어진 신라와 조선 비운의 왕들이 걸었던 애절하고 비극적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고갯길이다.

배재는 폐위된 후 유배 행렬 길에 나선 조선 6대 왕인 단종(1452~1455년)의 '눈물의 고개'이자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년~935년)의 '애통의 고개'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고려와 조선이라는 두 나라 사이에서 '애절함과 슬픔, 나라와 왕권'을 잃은 비운의 왕들에게 고뇌가 중첩된 배재 고개였다.

그렇다면 배재 고갯길은 어떤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까. 1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순왕 시대인 930년대 신라는 정치·군사 등 국력 약화로 왕권을 잃어갔다.

신라의 약화 속에 신흥 국가들이 등장했고 이 가운데 고려가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한다. 결국 신라는 935년 고려에 항복했고 '신라 왕조시대'도 막을 내렸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 도로 옆에 세워진 신라 경순왕의 제2의 궁터 '이궁지 안내판'.2026.3.8/뉴스1 손도언 기자

제천군지(1969년 제천군지편찬위원회 편찬) 기록을 보면 신라 왕조 시대가 끝날 무렵 경순왕은 지금의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에 머물렀다.

방학리에는 경순왕의 '제2의 별궁터'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이곳에서 궁터의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방학리의 마을 도로변에는 두 개의 돌단으로 싼 '돌 비석'이 세워져 있다. 돌 비석 윗돌에는 '경순왕'이라고 글자가 새겨져 있다. 경순왕 이름 아래 작은 글씨들도 적혀있다.

돌 비석 옆에는 '경순왕 이궁지'라고 적힌 작은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이궁(離宮)의 한자 뜻처럼 경순왕이 신라의 수도 경주에 이어서 또 다른 궁궐을 제천에 둔 것이다.

경순왕은 항복을 위해 별궁 터가 있던 방학리에서 운학천을 따라 3㎞가량 떨어진 화당리의 배재 고갯길을 넘어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종의 유배길'로 알려진 충북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와 강원 원주시 귀래면 운남리의 고갯길인 배재.2026.3.8/뉴스1 손도언 기자

배재는 강원 원주시와 충북 제천시에 걸쳐 있는 백운산(1080m) 자락에 있다. 날개를 펼친 새의 머리 모양처럼 생겼는데 험준한 백운산 자락 중 가장 낮은 고갯길이다.

고려의 개경, 조선의 한양으로 통하던 길로 경순왕과 단종이 이 고개를 넘은 것으로 전해진다.

단종은 유배지 최종 목적지인 강원 영월의 청령포로 가기 전 이곳 배재 정상에서 한양을 향해 마지막으로 절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종섭 제천문화원장은 "천년의 역사 신라를 잃은 경순왕이 제천 배재 고개를 넘으면서 나라를 잃은 애통함과 슬픔 그리고 눈물이 배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순왕이 배재를 넘고 500여 년이 지난 후 유배길에 나선 조선의 단종도 경순왕이 지난 그 길(배재)을 지났다"고 전했다.

윤 원장은 "당시 단종은 이 배재 고갯길에서 경순왕의 슬픔 등을 생각하는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k-55s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