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발전위원회 "독립유공지역 지정 법률 제정 범시민운동 추진"

"제천 1907년 독립유공 중심 지역으로 치열한 독립운동 전개"

1907년 8월 23일 일본에 의해 처참하게 모두 불에 탄 제천시내.(촬영:영국의 매켄지 기자·제천문화원·정삼철 전 충북학 연구소장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뉴스1
1907년 8월 일본의 만행으로 딸을 잃은 노모.(촬영:영국의 매켄지 기자·제천문화원·정삼철 전 충북학 연구소장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뉴스1

(제천=뉴스1) 손도언 기자 = 충북 제천발전위원회는 28일 제천을 '독립유공지역'으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뉴스1 2025년 8월 15일 보도>

위원회는 전날 제천시 여성문화센터에서 '제천시 독립유공지역 지정 학술 세미나'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찬구 위원장은 "현재 개인에게만 지정돼 있는 독립유공자는 있는데, 독립유공지역은 없어 법률 제정을 해야 한다"며 "'제천시 독립유공지역 지정'을 위한 법률제정을 위한 범시민운동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제천은 1907년 독립유공 중심 지역으로 치열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곳"이라며 "이에 따라 일제는 제천을 불바다로 만들어 제천이 완전히 초토화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충북 제천문화원과 향토 사학자 등에 따르면 1907년 7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 항쟁이 고조됐다.

이강년, 신백, 한봉수 등 수많은 의병장이 제천지역에서 활약하며 일제에 맞섰고, 일본은 의병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제천지역을 주목했다.

제천의병은 118년 전인 1907년 8월 15일 일본군과 제천 천남 전투를 벌였고, 이때 제천 의병은 첫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얼마 후 제천 의병에 패한 일본은 제천을 '의병의 본거지'로 지목하고 무차별적 보복 작전에 돌입한다. 무장한 일본 군인들은 제천지역 민가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총칼로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당시 기록엔 제천지역 초가집 등 수백여채의 가옥은 불에 탔고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시내를 벗어나 숲으로 몸을 숨겼다.

이때 제천은 하루아침에 도시가 사라지다시피 했고 잿더미로 변했다. 역사상 가장 슬프고, 참혹했다.

이런 내용을 전해 듣고 제천으로 달려 온 영국의 매켄지 기자는 당시 목격한 상황을 "제천지역에 일장기만이 휘날렸고, 항아리 조각 하나 제대로 남은 게 없었다. 지도에서조차 사라진 도시가 됐다"고 기록했다.

이 위원장은 "영국의 기자인 맥켄지가 촬영해 기록한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1차 학술 세미나에 이어 다음 달 20일 엄태영 국회의원실과 공동으로 2차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제천시 독립유공지역 지정 학술세미나.(제천발전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뉴스1

k-55s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