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억 빚에 쫓겨…수면제로 아내와 세딸 '잘못된 선택'[사건의 재구성]
갭투자 실패로 무너진 검도관, 채무와 절망이 부른 가족 참극
法 "자녀를 소유물처럼 생사 결정, 용납 안돼" 징역 25년 선고
- 이재규 기자
(옥천=뉴스1) 이재규 기자
2018년 8월 24일. 충북 옥천읍의 검도관 문을 연 A 씨(당시 42세)는 12년 동안 운영해 온 검도관을 한참 바라봤다. 매트 위엔 아직 어제의 먼지가 남아 있었고, 창밖으로는 여름 햇살이 무겁게 깔렸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끝을 향해 기울어 있었다.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로 시작한 검도관은 대전의 한 원룸 갭투자 실패 이후 무너지기 시작했다.
검도관 운영도 예전 같지 않았다. 수입보다 내야 할 이자가 많아졌고 결국 사채와 일수까지 손을 댔다.
그해 여름, 그의 이름으로 된 빚은 8억 원으로 불어났다.
아파트 담보 1억 2000만 원, 은행 3억 원, 지인 차용 1억 9000만 원, 사채 7000만 원, 캐피탈과 신용대출 1억 원 가까이. 심지어 제자 세 명의 명의로 1억 2000만 원을 더 대출받았다.
같은 해 8월 20일. 제자 부모들이 검도관으로 찾아와 항의했다.
그제야 그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모든 빚의 규모를 털어놨다.
"사람들한테 알려지면 도장을 못 할 거야" 아내는 충격을 받았고 A 씨는 채권자의 독촉을 피하려 가족을 처제의 집으로 피신시켰다.
하지만 나흘 뒤 검도관 문을 다시 두드린 사람은 채권자였다.
"내일까지 변제 계획서를 써내세요." 그 말은 곧 파국의 신호였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채업자들이 이해 안 해줄 거야. 같이 가자'
8월 24일 오전 11시 48분쯤 A 씨는 옥천읍의 한 의원을 찾아 "아이들이 잠을 잘 못 잔다"고 말하며 수면제 7알을 처방받아 약국을 나섰다.
'아이들 몸에 상처라도 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는 잠이라도 깊이 재워 보내기로 했다.
그날 오후 2시, A 씨는 세 딸(10·9·8세)에게 마지막 외출을 선물했다. 대전의 장난감 가게에서 피규어를 사주고 오후 3시쯤 옥천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4시,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가 건넨 약을 먹었다. 잠이 들자 집 안은 적막에 잠겼다.
잠시 뒤 그는 작은방으로 향했다. 그날 오후 세 아이의 웃음소리는 그렇게 멈췄다.
울고 있던 아내에게 그는 조용히 말했다. "아이들은 다 보냈어" 아내는 "나도 애들처럼 가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오후 7시 30분, 집 안의 불빛이 꺼졌다.
다음 날인 8월 25일 오후, 119구급대는 피를 흘린 채 자해한 A 씨를 발견했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빚 때문에 가족과 함께 죽고 싶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법원은 이 사건을 경제적 비관에 따른 계획적 살인으로 판단했다.
청주지법 영동지원은 "피고인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겨 생사를 결정했다"며 "경제적 절망이 생명을 끊을 이유가 될 수 없다. 양육의 책임이 있는 가장이 가족의 생명을 거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도 형은 유지됐다.
jaguar9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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