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년 만의 사죄…옥천 찾아와 고개 숙인 임진왜란 왜장 후손
조계종 가산사에서 '한일 평화의 날' 행사
'참회·화해·평화' 붓글씨…양국 평화 기원
- 장인수 기자
(옥천=뉴스1) 장인수 기자 =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던 왜장의 후손들이 한국을 찾아 선조의 잘못을 사죄했다. 임진왜란 후 433년 만이다.
충북 옥천군 안내면에 자리한 조계종 가산사에서 10일 오후 국가보훈부가 주최하는 '대한 광복 80주년 기념 및 한일 평화의 날 행사'가 열렸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왜장의 17대 후손 히사다케 소마 씨(24)와 히로세 유이치 씨(70)가 이 행사에 참석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과 이광희 국회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불교계 인사, 주민 등 100여 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히사다케 씨는 이 자리에서 "후손으로서 임진왜란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일본인들이 잘못된 건 잘못됐다 하고 미래 평화 시대로 나가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왔다"고 말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충청도를 짓밟았던 5진 소속 쵸소 가베모토치카 왜장의 17대손이다.
히로세 씨는 6진 소속 도리다 이치 왜장의 17대손으로 왜군 출병지인 규슈 사가현 가라츠 출신이다. 부산 신라대에서 6년간 강의한 적이 있는 그는 한일관계사에 해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숨진 서예원 진주 목사의 후손을 만나 용서를 빌고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
두 사람은 이날 가산사 경내 호국충혼탑 앞에서 거행되는 금산전투 의병·승병 추모제에 참석해 제주를 올리고 선조들의 만행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숨진 서예원 진주 목사의 후손인 서재덕씨를 만나 용서를 빌고 화해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양국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참회' '화해' '평화'란 붓글씨로 3가지 족자를 만들어 왜장 후손과 피해자 후손, 국가보훈부가 나눠 갖는 퍼포먼스도 했다.
김문길 박사(부산외대 일본학과 명예교수)와 가산사 주지 지원스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날 행사가 성사됐다.
왜군들이 베어간 조선인 귀·코무덤(耳鼻塚)에 관심이 많은 두 사람은 3년 전 일본에서 열린 귀·코무덤 위령제에서 만나 한일 양국의 화해를 위한 행사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김 박사는 "지원 스님이 주지로 있는 가산사가 임진왜란 의병장인 조헌과 승병장 영규 대사의 진영(초상화)을 모신 절이란 사실을 알고, 평소 친분이 있던 왜장 후손들과 논의해 이번 참회와 용서의 자리를 주선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원 스님은 "임진왜란 발발 433년 만에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을 계기로 화해와 용서, 나아가 평화의 미래로 함께 가자는 취지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행사 후 청주시 소재 단재 신채호 선생 묘소와 사당, 의암 손병희 선생 생가 등을 둘러본다. 이튿날 천안 독립기념관 방문 일정을 끝으로 일본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가산사는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대인 720년에 창건됐다.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이 군영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전란 중 불탔으나 1624년 인조 때 중건됐다.
이후 숙종 때 호국사찰로 지정돼 영규 대사와 조헌 의병장의 진영을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고 있다. 2019년 의·승병을 기리는 호국충혼탑을 세웠고, 2022년부터 호국문화체험관도 운영 중이다.
jis490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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