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갑 건물은 그만"…서울 도시혁신, 공급 넘어 공간 경쟁력 키운다
민간 창의설계에 용적률·높이 인센티브…패스트트랙 도입
한강·광화문·노들섬 잇는 오세훈표 '디자인 서울' 확장
- 신건웅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성냥갑'처럼 획일적인 아파트와 네모난 업무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선 풍경, 용적률과 높이 기준에 맞춰 찍어낸 듯 반복되는 건물로 가득 차 답답했던 도심.
그랬던 서울의 풍경이 달라진다. 서울시가 민간의 창의적 건축 디자인에 규제 완화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공급 중심이었던 도시개발 패러다임이 공간 품질 중심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자치구 공무원과 설계자, 사업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이번 설명회는 단순한 행정 안내 행사가 아니었다. 2023년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사업을 도입한 이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제도를 손질하고, 도시 디자인 정책의 방향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사업은 민간이 창의적인 건축 디자인을 제안하면 높이 제한이나 용적률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 주는 제도다. 건축물 하나를 짓더라도 단순히 면적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 경관과 공공성을 높이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주택을 공급하고 얼마나 높은 건물을 짓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도시의 매력과 공간 품질이 사람과 기업을 끌어들이는 핵심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 주요 도시들은 건축과 공공공간을 도시 브랜드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뉴욕의 하이라인파크와 허드슨야드, 파리의 센강 수변 재생,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개발은 단순한 도시정비 사업을 넘어 도시 브랜드를 형성한 대표 사례다.
서울시 역시 도시 디자인을 미래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보고 있다.
이번 설명회에서 공개된 제도 개선 내용 중 가장 큰 변화는 행정절차 간소화다. 그동안 혁신사업에 참여하려면 대상지 선정과 인센티브 심의를 각각 받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한 번에 심사가 가능해진다. 이른바 '패스트트랙' 도입이다. 사업자는 준비해야 할 서류 부담이 줄고 결과도 더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지역 균형발전도 고려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개발사업이 집중됐던 강남권 외에 비강남권과 소규모 부지에는 가점을 부여한다. 디자인 혁신이 특정 지역의 랜드마크 사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서울 전역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사후관리 역시 강화한다.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인센티브를 받은 뒤 실제 건축 과정에서 설계가 훼손되는 일을 막기 위한 방침이다. 서울시는 건축허가와 착공, 준공 과정 전반에서 디자인 품질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이 같은 변화는 부동산 개발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동안 개발사업의 경쟁력이 용적률과 사업성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디자인 역량이 새로운 경쟁 요소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시행사와 건축사무소가 차별화된 공간 설계를 통해 추가 인센티브를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가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사업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오세훈 시장의 일관된 도시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다.
오 시장은 민선 4기 시절인 2007년 '디자인 서울'을 시정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도시 디자인을 행정의 주요 의제로 끌어올렸다. 당시 버스정류장과 가로시설물, 공공건축물 디자인 개선 등 도시 미관 향상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도시 전체 공간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정책이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1년 시장직에 복귀한 이후에도 오 시장은 '매력도시 서울'을 핵심 비전으로 제시하며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광화문광장 재구성, 노들섬 글로벌 예술섬 조성 등을 추진했다. 수변감성도시,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감사의 정원, 한강버스 등 개별 사업 역시 단순한 시설 공급이 아니라 도시 경험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사업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공공이 직접 건축물을 짓는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 개발사업에도 창의적 디자인과 공공성을 요구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공간 품질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디자인 혁신을 단순한 건축 정책이 아닌 도시 브랜드 전략으로 보고 있다.
김지호 서울시 미래공간담당관은 "서울의 경쟁력은 시민이 매일 마주하는 건축물의 창의성과 그 안에 담긴 디자인의 품격에서 결정된다"며 "성냥갑 같은 획일성을 벗어던지고, 서울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시민의 삶을 바꾸는 창의적인 건축을 그려내겠다"고 말했다.
k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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