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 몇 초 남았지?"…공무원의 궁금증이 서울을 바꿨다

직원 제안 7500건, 실행률 98%…창의행정이 바꾼 서울
'저비용·고효율' 성과…AI 결합해 3.0으로 진화

서울의 한 교차로에 적색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이 설치돼 있다. 적색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은 기존 녹색신호뿐만 아니라 빨간불 대기시간까지도 알려줘 보행자의 답답함을 덜어주고 효율적인 이동을 돕는 한편 무단횡단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 뉴스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신호등 앞에서 '빨간불이 언제 끝나지'라고 궁금해한 건 비단 한두 명만이 아니었다. 서울시 한 직원은 이 일상의 불편을 아이디어로 구체화했고, 지금 서울 도심 곳곳에는 적색 신호 잔여시간을 표시하는 신호등이 설치됐다.

지하철에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 개찰구를 나갔다가 다시 탔을 때 운임이 재부과되는 문제도 있었다. 이를 개선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15분 재탑승 무료 제도'가 도입됐다. 모두 현장 직원들의 문제의식이 바꾼 변화였다.

서울시는 공무원들이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창의행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행정 혁신부터 1·2인 가구 증가에 대응하는 생활밀착형 정책까지 직원들의 다양한 제안을 공유하는 '창의공유회'를 열었다.

이번 공모에는 총 766건이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AI 기반 행정 혁신과 1·2인 가구 대응 정책 등 8건이 우수 제안으로 최종 선정됐다.

공무원 누구나 자유롭게 아이디어 제안

창의행정의 뿌리는 오세훈 시장 첫 취임 후인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는 당시 '창의시정'을 도입해 공무원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반포대교 달빛무지개 분수, 반포 세빛섬, 세종문화회관 '천원의 행복' 등이 이 시기 나온 정책들이다. 당시 연간 아이디어 제안 건수는 4만 건에 달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행정 기조 변화로 창의시정은 정체기를 겪었다. 제안 건수가 4만 건에서 149건으로 99.6% 급락했다.

전환점은 2022년이다. 아이디어 제안 시스템을 재가동하면서 2023년 이후 누적 제안은 7500여 건으로 늘었고, 그중 156건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중구 시청에서 열린 시정홍보 숏폼 & 창의 발표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창의발표회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창의행정 우수사례를 시민,직원과 공유하는 행사다. 2025.12.24 ⓒ 뉴스1 김명섭 기자
작지만 확실한 변화…"불편 줄이고, 효율 높였다"

창의행정 아이디어의 특징은 '저비용·고효율'이다. 상습 정체 구간인 봉은교 일대에서는 방치된 중앙분리대를 좌회전 대기차로로 전환해 병목을 줄였고, 동부간선도로 녹천교 진출로 확장으로 차량 흐름을 개선했다. 대규모 도로 확장 대신 기존 구조를 재설계해 비용과 시간을 줄인 점이 특징이다.

눈이 침침해 세금 고지서를 보기 어려운 어르신을 위해 글씨 크기를 키우고 핵심 정보만 남긴 '큰 글씨 고지서'는 민원 감소와 행정 신뢰도 제고 효과를 거뒀다. 또 쪽방촌 주민이 필요한 물품을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온기창고'는 복지 방식을 '선별에서 자율로 전환한 사례'로 꼽힌다.

기존 행정 서비스의 품질 개선도 이어졌다. 경찰청 유실물 통합포털 '로스트(LOST)112'와 공원 유실물 관리 시스템을 연계해 한 번의 조회로 분실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공공 공사장 부실시공 방지를 위해 일부 공정에만 적용되던 '동영상 기록관리'는 전 과정으로 확대했다.

이외에도 △비 오는 날 차선 시인성을 높이는 태양광 LED 도로표지병 설치 △지하철 행선지 표기 확대 △계절마다 설치하던 에어캡을 반영구 덧유리로 교체 △공원 내 맨발 걷기 흙길 조성 등이 창의행정 사례다.

창의행정 발표회
"이젠 AI다"…창의행정의 다음 '승부수'

서울시는 올해 창의행정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AI 협업'이다. 반복 업무는 AI에 맡기고, 직원들은 더 창의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17일 열린 창의제안 공모에서도 'AI를 활용한 행정 개선'을 주제로 △지하철 혼잡도·온도 분석 기반 냉난방 자동 제어 △AI 카메라를 활용한 실시간 주차 정보 제공 △AI 기반 동·식물원 운영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한편 서울시는 창의행정을 통해 공무원들이 지시 수행 중심에서 벗어나,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업무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조직의 자율성과 동기가 높아지고 시민 참여도 확대되는 추세다.

서울은 현재 도시종합경쟁력지수(GPCI) 기준 세계 6위 도시다. 런던·도쿄·뉴욕·파리·싱가포르에 이은 순위로, 2024년 대비 선도 도시와의 격차를 98점에서 5점 수준으로 좁혔다. 서울시는 이러한 성장의 동력 중 하나가 창의행정이라고 평가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소할수록 아름답고, 작을수록 가치 있다'는 말이 창의행정을 가장 잘 설명한다"며 "공무원들이 자유롭게 고민하고 상상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