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으로 걷는 산…오세훈의 '워킹행정'이 바꾼 남산의 풍경[서평]
새 저서 '서울시민의 자부심을 디자인하다' 출간
- 한지명 기자
(서울=뉴스1) 한지명 기자
하루의 시작, 나는 어김없이 남산을 걸으며 시작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멈추지 않는다.(중략) 나의 한 시간은 천만 시간과 같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닦달하며 어디든 가보고 걷고 생각한다. 회의실에서 듣는 보고와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서울시민의 자부심을 디자인하다' 中
최근 비가 내리는 새벽, 남산 산책로를 걷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뒷모습이 공개됐다. 수행비서가 기록한 이 사진들은 오 시장의 하루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저서 '서울시민의 자부심을 디자인하다'에서 오 시장은 매일 아침 남산을 걸으며 마주했던 고민들을 정책의 밑그림으로 소개한다. 그에게 남산은 서울의 미래를 구상하는 가장 넓은 현장이자, 발로 뛰는 '워킹(Walking)' 행정의 출발점인 셈이다.
오 시장은 저서에서 기존 등산 문화를 정상을 향해 치닫는 '수직의 정복'으로 표현한다. 능선을 따라 일직선으로 몰려가는 풍경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이었으나, 그는 이 방식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구조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산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고 도는 길은 없을까." 이 질문은 급경사 중심의 등산로가 고령자나 아이를 동반한 가족에게는 일종의 장벽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제주 올레길에서 가족들과 겪은 일화는 이를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 뙤약볕 아래 가족들의 원성을 들으며 그는 걷는 길의 성패가 접근성과 쾌적함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등산을 정복이 아닌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수평의 보행으로 재구성했고, 이러한 고민은 남산을 넘어 서울 전역의 산자락을 잇는 '서울둘레길' 조성으로 이어졌다.
오 시장은 스스로를 '시스템 디자이너'로 부른다. 화려한 외관보다 시민의 일상 속에 숨겨진 불편을 찾아내는 것이 디자인의 본질이라는 지론이다. 보고서상의 숫자보다 현장의 보행 환경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0월 남산에 도입된 '시민 개방형 샤워장'이다. 매일 아침 남산을 달리는 오 시장은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이 쾌적하게 일상을 이어가려면 샤워장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렴해 중부공원여가센터에 무료 샤워장을 마련했다.
무료 샤워장은 개방 4개월 만에 이용객 2000명을 돌파하며 "공공 서비스 중 최고의 체감도"라는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새벽마다 계단의 단차를 살피고, 인적이 드문 곳에 지능형 CCTV와 비상벨을 설치하는 조치들 역시 현장과 정책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들이다.
남산 자락을 끊김 없이 하나로 잇는 보행로는 이러한 고민이 현실화된 공간이다. 지난해 10월 개방된 1.45㎞ 구간의 무장애 산책로인 '하늘숲길'은 남산 보행 환경의 변화를 상징한다. 가파른 지형 탓에 접근조차 어려웠던 남산 중턱을 완만한 데크길로 연결해,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자도 숲의 눈높이에서 도심을 조망하며 산책할 수 있게 됐다.
산을 밑에서 바라만 보던 이들에게 남산의 품을 되돌려줬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보행권의 사각지대를 메우자, 하늘숲길은 개방 한 달 만에 9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찾는 명소가 됐다.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한 시민의 목소리는 거창한 구호보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작은 변화가 시민에게 더 큰 만족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 시장은 책의 말미에서 새로운 시작을 앞두었거나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기꺼이 서울의 숲길로 나오시라"고 권한다. 길은 늘 그 자리에서 시민을 맞이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이제 남산 보행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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