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자원 화재로 드러난 디지털 정부의 '구조적 한계'

[국정자원 복구]② 관리 부실·DR 공백이 피해 키워
시스템 이중화 추진…"디지털 전환 기초부터 다질 것"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서울=뉴스1) 구진욱 기자 =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 화재로 전국 행정망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이번 사고는 단순한 시설 화재를 넘어 국가 정보 인프라 관리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예산·조직·기술 관리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로 보고, AI 전환에 앞서 디지털 전환(DX)의 기초부터 다지겠다고 밝혔다.

배터리실 관리 부실·DR 공백이 키운 행정망 붕괴

지난 9월 26일 오후 8시 15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7전산실에서 무정전전원장치(UPS) 교체 작업 중 화재가 발생했다. UPS 배터리가 별도의 배터리실로 분리되지 않고 전산 장비와 같은 공간에 설치된 상태에서 교체 작업이 진행되던 중 리튬이온 배터리 모듈이 파열되며 불이 났다. 배터리는 열폭주 상태에 들어가 진화가 지연됐고, 불은 전산실 주요 장비로 확산했다. 일부 모듈은 잔열 제거를 위해 수조에 담겨 처리돼야 했다.

화재 직후 전산실 내부는 초미세 금속 분진과 그을음으로 오염돼 인접 장비의 정상 작동이 불가능해졌다. 이 영향으로 주민등록과 문서24, 국민신문고, 재난안전 서비스, 장기조직·혈액관리 시스템 등 709개 행정정보시스템이 동시에 중단됐다.

행정 현장의 혼란도 즉각 나타났다. 내부 행정망 문서 저장소가 마비되면서 각 부처는 보고서와 국정감사 제출 자료 접근에 차질을 빚었고, 일부 중앙부처는 출력물과 이동식 저장장치에 의존해 업무를 이어갔다. 전자 처리에 기반한 행정업무가 단기간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재해복구(DR) 체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됐다. 대전센터 장애 시 공주센터나 대구센터로 자동 전환되도록 설계된 DR 구조가 있었지만, 부처별 백업 기준과 연동 체계가 통일돼 있지 않아 실제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시스템은 최신 백업본조차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조사 결과, UPS 교체 과정에서 본체 전원만 차단된 상태에서 배터리 모듈 전원이 연결된 채 절연 조치 없이 작업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충전율 80~90%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분리되며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UPS 교체 공사는 3단계 불법 하도급 구조 속에서 이뤄졌으며, 서버와 배터리가 동일 공간에 배치된 전산실 설계와 작업 관리 부실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시스템 이중화 단계적 추진…"전산망 운영 전반 재설계해야"

정부는 화재 발생 95일 만인 30일 709개 행정정보시스템 전부의 복구를 완료하고 재난 대응 체계를 종료했다. 다만 이번 사고는 복구 여부와 별개로, 전산망 관리 체계 전반을 다시 점검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근본적으로 마련해야 할 과제를 남겼다.

정부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국가 전산망 전반의 재해복구(DR) 체계와 이중화 구조를 전면 재정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시스템부터 단계적으로 이중화 대책을 적용하고, 주요 시스템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이중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1~4등급으로 운영돼 온 국가 전산자원 중요도 분류 체계도 세분화해, 재난 상황에서 우선 보호·복구 대상이 보다 명확해지도록 기준을 손질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전산망 운영·관리 구조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한 논의에도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는 'AI 인프라 거버넌스·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국정자원 화재를 계기로 드러난 구조적 문제를 점검하며 전산망 재설계를 위한 근본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단순한 시설 복구를 넘어, 예산·조직·기술 관리가 결합된 전산 인프라 거버넌스 전반을 재정비하겠다는 입장이다.

국가 AI전략위는 지난 15일 출범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태를 예산·조직·기술 관리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로 보고, AI 전환에 앞서 디지털 전환(DX)의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안팎에서는 전산망 통폐합이나 조직 개편과 같은 구조 개편보다, 우선 재해 상황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대응 역량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공과 민간 클라우드를 함께 활용하는 방식의 이중화 구조와 장애 발생 시 신속한 전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재해복구 체계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공주센터의 역할 역시 단순 예비시설을 넘어 범정부 차원의 데이터 백업 거점으로 재정립할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kjwowe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