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 없는 정부 전산망 마비…'국정자원 화재' 95일 만에 마무리

[국정자원 복구]① 709개 정부 시스템 '셧다운'
배터리 이설 중 화재…작업자 실수 "인재" 결론

28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 소실된 리튬이온배터리가 소화 수조에 담겨 있다. 2025.9.28/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한지명 기자 =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전산실 화재로 중단됐던 정부 행정정보시스템이 30일 완전 복구됐다. 지난 9월 26일 화재 발생 이후 95일 만이다. 행정안전부는 3개월 넘게 이어진 복구 작업 끝에 709개 행정정보시스템 전면 정상화를 밝혔다.

대전 본원이 멈추자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부터 정부24·국민신문고·인터넷우체국 등 주요 행정서비스가 잇따라 중단되며 시민 불편이 이어졌다. 배터리 불씨 하나에서 시작된 이번 행정망 장애는 공공 시스템 백업 체계의 취약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배터리 이설 중 화재…작업자 실수 "인재(人災)" 결론

3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화재는 9월 26일 오후 8시 15분께 대전 본원 5층 7-1 전산실에서 발생했다.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던 중 배터리 한 개에서 불꽃이 튀었고, 불길이 전산장비로 번졌다.

국정자원은 2014년식 리튬이온 배터리 384개를 6개 조로 나눠 이설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첫 번째 조를 옮긴 뒤 두 번째 조 작업 도중 발화가 일어났다.

불은 순식간에 확산됐다. 서버 740대와 배터리 384개가 전소됐고, 직접 피해 96개 시스템 외에도 전력 차단으로 인접 전산실이 멈췄다.

스프링클러 대신 설치된 가스계 소화설비가 화재 직후 자동으로 작동했다. 직원들과 소방대가 할론 소화기를 사용해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7분 만에 다시 치솟았다. 감전 위험이 커지자 직원들은 5층 전산실 전체 전원을 차단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특성상 재발화가 이어졌고, 불길은 다음날 오전 6시 30분께 진화됐다. 오후 9시 30분쯤 전소된 배터리가 모두 반출됐다. 28일에는 경찰·소방·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감식반이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초기 국정자원 측은 "작업 전 배터리 전원을 내린 뒤 이설을 진행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UPS 본체 전원만 차단됐고 배터리 모듈(랙) 전원은 연결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작업자들은 절연복을 입지 않았고, 절연 공구도 사용하지 않았다. 충전된 배터리를 분리하던 중 불꽃이 발생했다는 게 경찰의 조사 결과다.

작업 인원 발표도 오락가락했다. 행안부는 29일 오전 중대본을 통해 '작업자 13명'이 참여했다고 발표했지만, 같은 날 오후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은 '8명'으로 정정했다. 30일에는 "공무원 1명, 방제실 직원 5명, 감리인 1명, 작업자 8명 등 총 15명"이라고 정정했다. 경찰은 CCTV와 진술을 종합해 현장 인원을 11명으로 파악했다.

11월 25일 대전경찰청 수사전담팀은 "국정자원 화재는 작업자 과실에 따른 인재(人災)"라고 결론지었다. 경찰은 UPS 본체만 차단된 상태에서 배터리 모듈 전원이 연결된 채 절연조치 없이 작업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지난 23일 업무상 실화와 전기공사업법 위반 혐의로 국정자원 화재 관련자 19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95일 만에 709개 시스템 완전 복구

정부는 화재 다음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구성해 복구에 착수했다.

전소된 시스템 개수도 바뀌었다. 화재 2주 만인 10월 9일 행정안전부는 화재로 셧다운된 행정정보시스템이 당초 647개에서 709개로 늘었다고 정정했다. 행안부는 내부 관리시스템 '엔탑스(nTOPS)'를 복구해 전체 장애 시스템 수를 다시 집계했다고 설명했다.

10월 17일 전체 복구율이 절반을 넘었고, 31일 국민신문고와 정부24 등 1등급 시스템 40개(100%)가 정상화됐다. 11월 6일에는 복구율이 95.9%에 도달해 위기경보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됐다. 11월 14일 본원인 대전센터 693개 시스템 복구가 모두 완료됐고, 대구센터로 이전된 시스템 복구가 이어졌다.

이달 21일 대구센터 3개 시스템을 제외한 706개 시스템이 모두 복구되면서 복구율은 99.6%에 도달했으며, 30일 오전 9시 30분 모든 시스템이 복구됐다.

이번 복구에는 정부와 민간 인력 약 800명이 투입됐다. 공무원 전용 내부 클라우드 'G-드라이브'는 서비스가 재가동됐지만 데이터는 복구되지 않았다.

복구 완료 후 행안부는 공공 정보화 인프라 재설계에 착수했다. 2026년도 예산에 긴급 복구 장비 및 민간 클라우드 전환 490억 원, 재해복구(DR) 시스템 개선과 대전센터 단계적 이전 3434억 원이 반영됐다.

행안부는 인터넷우체국 등 13개 핵심 시스템에는 2120억 원을 투입해 '액티브-액티브(Active-Active)' 이중운영 체계 방식의 DR 체계를 우선 도입할 계획이다. 두 개 이상의 시스템을 동시에 운영해 한쪽에 장애가 발생해도 서비스 중단 없이 자동으로 전환되는 방식이다. 121개 시스템에 대해서도 스토리지 기반 DR 구축을 추진한다.

윤호중 장관은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정부는 국가정보자원 관리체계 전반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안정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hj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