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마저 없어지면 갈 데 없어요"…폭염 속 안식처 '동행목욕탕'
쪽방촌 인근 총 7곳 운영…폭염특보 시 야간도 개방
무더위쉼터 3770곳…8월부터 구청·청소년센터로 확대
- 구진욱 기자
(서울=뉴스1) 구진욱 기자 =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중앙시장 인근의 한 상가 지하 1층. 체감온도 35도, 습도 60%를 넘긴 폭염 속에서 쪽방촌 주민들이 매일같이 몸을 피하는 공간이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동행목욕탕' 중 한 곳인 '신동남사우나'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7월과 8월 두 달간 이곳은 밤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단순히 씻고 쉬는 공간을 넘어 여름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식처가 된다.
김동수 씨(71)는 이곳을 '그냥, 여름을 버틸 수 있는 곳'이라 표현했다.
"찜질방 한 번 가면 입장료만 만 원이에요. 음료랑 계란까지 사 먹으면 2만 원 넘어요. 우린 그게 안 돼요. 여긴 씻고, 쉬었다 가고, 커피도 주고, 다 공짜예요. 이 정도면 충분하죠"
서울시는 민간 후원을 받아 동행목욕탕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무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입장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으며, 운영 협력 시설인 신동남사우나에는 월 100만 원의 추가 지원금도 지급하고 있다.
목욕을 마친 주민들은 대화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뉴스 자막을 읽으며 몸을 식힌다. 어떤 이들은 말없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말한다.
김옥자 씨(75)는 "쪽방은 하루 종일 더워요. 안 나가면 그냥 쓰러져요"라며 "방 안에 있으면 눅눅하고, 사람도 지친다"고 했다.
동행목욕탕은 남성 수면실, 여성 수면실, 그리고 대화방으로 구성돼 있으며 여름철 하루 평균 20~30명이 이곳을 찾는다.
영등포 쪽방촌은 복사열이 빠져나가지 않는 구조에, 단열이 되지 않는 패널 지붕이 대부분이라 서울에서도 무더위에 특히 취약한 지역으로 꼽힌다. 게다가 주민들이 부담 없이 오갈 수 있는 냉방 시설은 사실상 이곳이 유일하다.
정환규 씨(80)는 "요즘은 목욕탕이 다 없어졌잖아요. 여기도 작년에 문 닫으려다 서울시 지원 덕분에 겨우 버틴 걸로 안다"며 "여기마저 없어지면 진짜 갈 데가 없어요. 더 바랄 것도 없어요. 그냥 이대로만 계속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설은 낡고 탈의실도 옛 형태 그대로지만 주민들은 불편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김동수 씨는 "시원하고 씻고 나갈 수 있으면 됐죠. 더 좋은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그냥 욕심이에요"라며 "지금처럼만 유지돼도 고맙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현재 서울 시내 5개 쪽방촌 인근에 총 7곳의 동행목욕탕을 운영 중이며, 이 중 5곳은 열대야 기간 야간에도 개방된다. 여름철 무더위 속 쪽방 주민들의 체온을 식혀주는 사실상 유일한 대피소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무더위에 취약한 시민들이 안전하게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구청, 도서관, 복지관, 경로당, 편의점 등 3770여 곳의 무더위쉼터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 오는 8월부터는 25개 전 자치구청사와 연간 388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시립 청소년센터 10곳도 무더위쉼터로 새롭게 지정돼 추가 개방된다.
서울시는 폭염특보가 발효될 경우 무더위쉼터 운영시간을 야간과 주말까지 탄력적으로 확대하고, 냉방 상태, 안내 표지, 시민 이용 편의성 등을 포함한 전수 점검 체계도 가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QR코드 스티커를 배포해 인근 쉼터와 쿨링포그, 쿨링로드 등 폭염 저감시설 위치도 스마트폰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한병용 서울시 재난안전실장은 "시민 누구나 일상 가까운 곳에서 안전하게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쉼터 운영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kjwowe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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