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방관의 처참한 현실…몸과 마음 모두 '총체적 난국'

안행위 국감서 확인된 소방공무원 근무환경
4년 새 순직자 32명…연평균 자살 7명 달해

23일 오전 대구시 동구 율하 휴먼시아에서 대구소방본부가 주최한 인명구조 화재진압훈련이 열렸다. 소방관들이 사다리와 특수차를 이용해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2014.9.23./뉴스1 2014.09.23/뉴스1 ⓒ News1 정훈진 기자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최근 한 취업 전문 사이트의 조사결과 대학생이 가장 존경하는 직업 1위에 꼽힌 소방공무원의 현주소다.

소방공무원의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고 알려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현실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지난 7일부터 시작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낡고 모자라고, 유독물질까지 사용…장비 빈약 심각

소방공무원들은 빈약한 장비에 의지한 채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사지에 뛰어들고 있다.

국감에서 공개된 소방방재청의 '전국 화학사고 발생현황'에 따르면 지난 8월 말까지 발생한 '화학 화재 및 폭발사고' 발생건수는 51건으로 지난해 26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소방관들을 보호할 수 있는 '화학 화재진압복'은 260벌로 3304벌의 전체 화학사고 보호복 중 8%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게다가 현재 국내 소방대원들이 사용하는 주황색 기동복은 열에 취약한 폴리우레탄이 합성된 재질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이같은 기동복은 불이 붙으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사용한 독가스인 시안화수소를 배출하게 된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불연성 소재인 100% 아라미드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또 소방방재청은 2010년 폴리우레탄 재질의 소방활동복을 입고 폐휴지 소각작업을 하던 소방대원이 화상으로 숨진 사고 이후 복장규정방침을 바꿀 것을 추진했으나 여전히 과거 활동복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비 부족과 노후율도 심각하다. 소방관이 헬멧에 다는 렌턴은 6명당 1대를 사용하는 등 태부족이다. 장비별 노후율은 헬멧 38.9%, 방화복 34.5%, 안전장갑 4.4%, 안전화 7.4%에 이른다. 무게가 14kg에 달하는 산소호흡기도 노후율이 21.9%나 됐다.

개인안전장비 전체로 보면 기준량보다 4.5%가 부족하고 그나마 16.5%가 노후된 것으로 나타났다. 화생방마스크는 노후율이 80%에 육박한다.

소방차도 낡기는 마찬가지다. '시도별 소방장비 보유 및 내용연수 초과현황'을 보면 지난해말 기준으로 주력 소방자동차 5682대 중 노후대수는 1202대로 노후율 21.2%를 기록하고 있다. 충남과 창원의 경우 각각 36.9%, 31.5%로 특히 높은 편이다.

설상가상으로 화재진압 현장에서는 여전히 인체에 매우 해로운 유독성 소화약제인 '수성막포'를 사용하고 있어 소방대원에게 치명적 피해를 줄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 약품은 OECD에서도 유해성이 입증돼 국내 소방관서에도 2011년부터 사용자제를 권고하고 있으나 지난해부터 지난 7월까지 12만리터의 수성막포가 계속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체 소화약제 보유량의 57%에 달해 폐기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4년간 순직 32명…1년에 7명 자살

안행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이 소방방재청으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최근 4년간 순직과 공상을 입은 소방공무원이 1390명에 달했다. 순직자가 32명이고, 공상자가 1358명이다.

연도별로는 2010년이 348명(순직8, 공상340), 2011년 363명(순직8, 공상355), 2012년 292명(순직7, 공상 285), 2013년 294명(순직3, 공상291) 등이며 올해도 5월까지 순직 6명, 공상 87명 등 총 93명에 달했다.

신체적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것도 큰 문제다.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PTSD), 우울증 등으로 자살한 소방대원의 수는 지난 5년 간 총 37명이다. 연평균 자살자 수는 7.4명이다.

PTSD 등 정신질환과 심리적 문제로 고통을 호소하는 소방대원은 2012년 388명에 견줘 지난해 1841명으로 4.7배 늘었다.

행정 및 전산업무를 하는 직원들을 제외한 전체 현장활동 소방대원의 수가 3만1500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10명 중 한 명의 소방관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있다는 추산이다.

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공개한 소방방재청의 '2014년 전국 소방공무원 심리평가 설문분석'에 따르면 치료의향이 있는 응답자는 28.6%로 나타났지만 현재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있는 경우는 0.7%에 그쳤다.

정신건강치료를 받지 않는 이유로는 '시간과 비용마련이 어렵다'(7.5%), '직장에서의 불이익'(6.4%), '직업 특성상 나약한 사람으로 비춰질 염려'(5.0%) 등이 꼽혔다.

지난 4월 전국 소방관 전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 전문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소방관이 3.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된 것도 충격을 주고있다.

알콜사용장애를 겪고 있는 소방공무원도 33.1%에 이르고 이중 21%가 전문가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2014년 전국 소방공무원 심리평가 조사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3만7093명 중 수면장애로 관리가 필요한 인원이 무려 1만3507명(36.4%)이었고, 특히 당장 치료가 필요한 인원도 8084명(21.8%)에 달했다. 유병율로는 대전이 49.7%로 가장 많았고, 창원 44.3%, 부산 44.1%, 경북 42.9%, 충남 40.3%였다.

◇일손 부족한데 '서장님 운전기사'까지

인력은 부족하고 업무는 과중한데다 수당이 체불되는 경우까지 감수해야 한다. 심지어 얻어맞기까지 한다.

특히 인력증원 없는 3교대 근무 전환은 오히려 소방대원의 재난 대응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소방공무원의 97%가 3교대 근무를 하고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2교대 때 7~9명이 출동하던 것이 3교대에서는 4~5명으로 줄어든 채 운영되고 있다. 현재 부족한 소방인력은 작년 연말 기준 2만757명에 달하고 있다.

정당한 경제적 대우를 받지도 못하고 있다.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소방방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미지급 초과근무수당 총괄 현황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까지 법원 결과에 따라 초과근무수당 지급대상 인원은 총 3만2395명이다.

하지만 이 중 2136명은 아직도 지급을 받지 못했으며 금액은 1739억원에 이른다. 시도별로는 서울이 560억원, 경기가 508억원, 인천이 370억원 등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얻어맞는 소방공무원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재난 대응 본연 업무외에 운전기사 노릇까지 해야 한다.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동안 폭행당한 119 구급대원은 661명이며 이중 71명은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2009년 구급대원 폭행건수는 74건, 피해 구급대원은 81명이었지만 지난해는 각각 145건, 164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피해 구급대원도 늘어나는 추세다.

처벌도 미약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게 돼있으나 가해자의 80% 이상이 술에 취한 상태라 대부분 벌금 100~200만원에 그치고 있다.

또 전국 197곳 소방관서 중 62곳(32%)에서 소방서장 출퇴근에 관용차를 이용하고 있었으며 이중 30곳에서는 소방관이 운전기사 노릇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공개한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소방인력도 부족한데 인명구조에 니서야 할 소방관이 서장의 출퇴근 운전기사 노릇까지 해야하는 것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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