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무차별 폭행·성범죄…사랑 아닌 집착이 낳은 비극적 결말
내연녀 거품 물며 의식 잃어가도 방치…30대, 강도살인 혐의 기소
법원 "살인 고의 입증 부족" 징역 13년 선고
- 이종재 기자
(춘천=뉴스1) 이종재 기자 = "오늘 만나자."
지난 1월 23일 오후 5시 50분쯤 강원 원주의 한 아파트에 살던 A 씨(30)는 같은 동에 사는 내연녀 B 씨(40)에게 전화를 걸었다. B 씨가 다른 남성과 연락을 주고받았던 일에 대해 추궁하기 위해서였다.
직감적으로 위협을 느낀 B 씨는 당시 지역 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떠올라 만남을 거부했다.
하지만 A 씨는 집요했다. B 씨는 A 씨 집착과 설득에 못 이겨 오후 6시 56분쯤 결국 A 씨의 집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극은 시작됐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A 씨의 추궁이 시작됐다. B 씨가 다른 남자를 만난 경위를 따져 묻던 A 씨는 주먹과 발로 B 씨의 온몸을 무차별 폭행했다.
겁에 질려 떨고 있는 B 씨를 향해 A 씨는 이른바 '벌금'도 요구했다. 그는 '다른 남자를 만나면 20만 원을 보내기로 약속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B 씨를 압박했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B 씨는 오후 9시 27분쯤 A 씨 계좌로 20만 원을 송금했다.
A 씨의 그릇된 집착과 폭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후 10시 40분쯤 추가로 10만 원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하던 A 씨는 B 씨가 거절하자 다시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이어진 유사성행위 요구에 B 씨는 "싫다. 아프다"며 저항했으나 A 씨는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날 A 씨의 폭행은 1시간 50분가량 지속됐고, 머리 부위에 집중됐다.
밤 12시를 넘어서도 A 씨는 B 씨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24일 오전 1시 35분쯤 두 사람은 밖에서 담배를 피운 뒤 B 씨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머리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B 씨는 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입에서 거품을 물었다.
B 씨의 이상 증세를 목격한 A 씨는 오전 2시 31분부터 자신의 휴대전화로 '뇌진탕 증상', '뇌출혈 전조증상', '동공 좌우로 움직임', '기절' 등을 검색했다. 피해자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직감했음에도 그는 즉시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
검색 후 1시간이 훌쩍 지난 오전 3시 37분에야 A 씨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 그는 "같이 있던 친구가 술을 한 병 마셨다. 담배 피우면서 어지러워서 살짝 머리를 박았다"고 둘러댔다.
B 씨는 오전 3시 49분쯤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끝내 외상성 경막하 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A 씨는 같은 날 오전 5시 35분쯤 응급실 대기실에서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 송치된 A 씨는 검찰 보완 수사를 거치며 강도살인 및 유사강간살인 혐의로 법정에 섰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춘천지법 원주지원 제1형사부(김지현 부장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직권으로 강도치사와 유사강간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건 당시 상황을 녹음했는데, 피해자를 살해하려 했다면 음성 파일을 남겨둘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부검 결과 피해자의 몸에서 다수의 멍 자국이 확인되나 살해를 위해 급소를 공격했다는 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해자가 알코올중독성 간질환을 앓고 있어 외상성 경막하 출혈이 쉽게 발생할 수 있던 체질이었다는 점도 참작됐다.
살인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으나 A 씨가 저지른 폭력과 성범죄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과도한 소유욕과 집착이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변질됐고, 만 40세의 피해자가 사망하는 비극적인 결과가 발생했다"며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겪었을 정신적·신체적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우며 유가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즉각 항소장을 제출했다. 2심 재판은 10월 7일 서울고법 춘천재판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leej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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