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빨갱이가 아니었습니다"…'속초 간첩단 사건' 58년 만에 무죄

유족 "58년간 집안 무너져" 법정서 눈물…검찰 직권 재심 촉구

1969년 '동해안고정간첩단 사건'(일명 속초간첩단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썼던 납북귀환어부 2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13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고 이동근 씨 유족 이정원 씨(사진 왼쪽)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문을 들어 보이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6.8.13 ⓒ 뉴스1 윤왕근 기자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아버지는 빨갱이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안은 58년 동안 다 망가졌습니다."

여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3일 오후 강원 춘천지법 강릉지원 중법정.

재판장이 1969년 '동해안고정간첩단 사건(일명 속초간첩단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납북귀환어부 고 이동근 씨와 고 김호섭 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반세기가 훌쩍 지난 58년 만에 내려진 법원의 판단이었다.

선고 직후 법정을 빠져나온 유족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문을 손에 든 채 억울했던 세월을 쏟아냈다.

고 이동근 씨의 아들 이정원 씨는 "우리 아버지는 조국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었는데 간첩으로 몰렸다"며 "58년 동안 우리 집안은 완전히 무너졌다. 형제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이어 "평생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했다"며 "오늘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잃어버린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라도 아버지의 억울함이 밝혀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 김호섭 씨의 아들 김자문 씨도 "오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함께해 준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무죄가 선고됐지만 우리 가족의 영혼은 이미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1969년 '동해안고정간첩단 사건'(일명 속초간첩단 사건) 피해자 유족과 변호인이 13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재심 무죄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직권 재심을 촉구하고 있다. 2026.8.13 ⓒ 뉴스1 윤왕근 기자

유족들은 판결이 확정되면 형사보상과 국가배상 청구 절차에 나설 계획이다.

유족 측 서창효 변호사는 "늦게나마 무죄가 선고돼 억울함이 해소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재심 청구 후 3년이 넘도록 선고가 지연됐고, 재판부가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아무런 유감 표명을 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무죄는 끝이 아니라 피해 회복과 명예 회복의 시작"이라며 "검찰이 항소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판결이 확정되면 형사보상과 국가배상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공동 피고인 가운데 아직 재심을 청구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며 "개별 피해자들에게만 재심 책임을 맡길 것이 아니라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 이동근 씨와 고 김호섭 씨는 속초에 거주하던 월남 피난민 출신으로, 흥덕호를 타고 조업에 나섰다가 북한으로 끌려간 뒤 1964년 12월 귀환했다. 이후 이동근 씨는 1965년 HID 공작 임무 과정에서 다시 납북됐다 귀환했다.

그러나 육군보안사령부는 1969년 2월 두 사람을 포함한 16명이 연루된 '동해안고정간첩단 사건'을 발표했고, 이들은 사건의 주동자급으로 지목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했다. 당시 사건은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2차 피해 사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사건으로 기록됐다.

유족들은 2023년 6월 "부친이 간첩 누명을 썼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진실화해위원회가 불법체포와 불법감금 사실을 인정했다. 이를 토대로 법원은 올해 5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으며, 검찰도 지난달 열린 재심 공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된 당시 피고인 16명 가운데 현재까지 5명이 추가로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유족들은 이날 남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