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혈압 떨어진 환자도 92㎞ 달려와…동해안 '권역책임기관' 절실

'권역급' 역할하는데 '책임기관' 지정선 제외
국립대병원 중심 지정 구조…현장-제도 괴리 심화

지난 17일 강릉아산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소속 의료진이 환자 처치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뉴스1 윤왕근 기자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환자 들어옵니다."

지난 17일 오후 6시 강원 강릉아산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구급차 사이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진은 쉴 틈 없이 환자를 분류하고 있었다. 들것에 실린 환자가 잇따라 들어오고 보호자들의 긴장된 표정이 교차하며 현장엔 긴박감이 감돌았다.

강원 동해안에서 발생한 중증·응급환자 상당수는 이곳으로 이송된다. 산악과 해안이 혼재된 지형 특성상 타 권역 병원으로의 신속한 이송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릉아산병원은 강원 영동권 유일의 상급종합병원으로, 동해안 최북단 고성부터 최남단 삼척은 물론 경북 울진과 영덕까지 아우르는 광역 진료권의 '최종 치료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응급실에는 삼척 도계에서 이송된 환자도 있었다. 119안전센터 기준 병원까지 거리는 무려 92㎞. 약초를 잘못 먹고 혈압이 떨어진 '경증' 환자였지만, 동해안 내 다른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응급실 한 의료진은 "강원 동해안은 대관령을 중심으로 단절된 구조라 사실상 별도 권역으로 봐야 한다"며 "강원 북부부터 경북 울진까지 광역 응급의료를 한 곳에서 떠받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강릉아산병원 응급실 입구에 119 구급차가 환자 이송을 위해 들어서 있다. 뉴스1 윤왕근 기자
"관광객까지 몰린다"…버티는 응급실

강릉아산병원 응급실을 찾는 월평균 환자는 2200여 명에 달한다. 그중 83.1%는 중증·준중증 환자로 분류된다. 사실상 권역 단위 중증 대응 병원 수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현장 의료진은 "야간과 주말에는 환자가 집중되고, 휴가철에는 관광객까지 겹치면서 부담이 더 커진다"며 "응급환자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도 쉽지 않아 대부분을 직접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해 강릉을 찾은 관광객은 3436만 9052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속초 2600만 4958명, 동해 1233만 7381명, 삼척 1224만 7868명, 고성 1286만 7253명, 양양 1554만 1620명으로 집계됐다.

이를 단순 합산하면 동해안 6개 시군에만 1억 1336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한 셈이다. 여기에 울진(867만 8680명)과 영덕(1087만 6688명) 등 경북 북부 지역까지 포함하면 총 1억 3290만 명으로 늘어난다.

막대한 관광객 유입에 따른 각종 사고·응급환자 수요에 대한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17일 강릉아산병원 응급실.뉴스1 윤왕근 기자
"역할은 권역급인데"…'책임의료기관' 제외

이 같은 역할에도 불구하고 해당 병원은 정부가 지정한 '권역 책임의료기관'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권역 책임의료기관은 공공의료 협력과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지정되며, 올해만 약 1조100억 원 규모의 재정 지원이 이뤄진다. 현재 전국 17곳이 지정돼 있지만, 강원도는 춘천 강원대병원 단 1곳에 그친다. 반면 충청권은 대전·세종·충남·충북 등 4곳이 지정돼 있어 지역 간 격차가 뚜렷하다.

강릉아산병원은 24시간 심뇌혈관질환 대응과 고위험 산모·신생아 치료 등 필수의료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민간병원이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인력난도 심각하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9명이 24시간 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상 운영을 위해서는 최소 15명이 필요하다는 게 현장 설명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권역급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제도적 지원은 뒤따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응급실 의료진은 "지원이 이뤄진다면 가장 큰 변화는 인력 확충"이라며 "인력 부족이 근무 환경 악화와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간에서 버텨주는 거점 병원이 무너지면 지역 응급의료 체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창식 강릉아산병원장은 "공공과 민간을 구분하기보다 실제로 필수의료를 수행하는 기관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현장과 제도 간 괴리가 커지면서 권역 책임의료기관 지정 확대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