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전쟁 111일] 24년 만에 열린 도암댐…논란 속 '마지막 카드'
24년 걸친 수질 불신·지역갈등의 기억…'최악 가뭄'에 방류 결정
검증위 출범하고, 매일 수질검사…재난사태 해제 후 역할 애매
- 윤왕근 기자, 신관호 기자
(강릉·정선=뉴스1) 윤왕근 신관호 기자 = 이번 가뭄 사태에서 강릉은 결국 24년간 닫혀 있던 '논란의 도암댐' 물줄기를 다시 열었다. 지난 9월 20일 첫 방류가 시작되자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수질 불신과 지역 갈등이라는 오래된 과제도 함께 고개를 들었다.
강릉의 물 부족은 올 여름 이후 한계치에 다다랐다. 지난 9월 12일 기준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역대 최저치인 11.6%까지 추락했고, 제한급수는 아파트 113곳을 포함한 대규모 단지로 확대됐다. 단수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선택지가 없다"는 비상론 속에 8월 말부터 도암댐 방류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이 와중에 재난사태까지 선포된 강릉시는 9월 10일 환경부와 공동으로 "도암댐 물을 비상 활용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하며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도암댐 활용에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는 20년 넘게 이어진 '수질 불신' 때문이다.
1991년 준공된 도암댐은 수력발전을 시작했으나 석회암 지대 특성상 농축산 오폐수와 토사, 녹조가 쉽게 유입됐다. 방류 이후 흙탕물 사태와 어류 폐사, 관광객 급감으로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2001년 발전 방류가 전면 중단됐다. 국책연구기관은 당시 정선 송천 일대 경제적 손실을 1조3064억 원으로 추산했다.
정선 주민들 사이에서는 '도암댐의 저주'라는 말까지 돌았다. 이번 가뭄을 계기로 도암댐 활용론이 다시 부상하자, 일부 단체는 "가뭄을 빌미로 한수원이 방류를 재개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논란 속에 강릉시는 민·관·학 합동 '도암댐 비상방류 수질검증위원회'를 꾸려 방류 전 과정을 점검했다. 위원회는 1차 검사에서 총인(TP)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지적했지만, 정수처리 과정을 거치면 생활용수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뒤따랐다.
실제 9월 20일 첫 방류 시 도암댐 원수의 수소이온농도, 용존산소, 총유기탄소 등 8개 항목 가운데 총대장균군을 제외한 7개 항목이 공개됐다. 환경부와 강릉시 분석 결과, 정수장에서 처리 가능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방류가 시작된 9월 20일 오전, 도암댐 수문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지켜본 주민들은 "와, 물이 나온다"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일부는 "이제 단수 걱정을 덜 수 있겠다"며 안도했지만, 또 다른 주민들은 "예전처럼 흙탕물이 들어올까 걱정된다"며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당초에는 도수터널(11.6㎞)에 고여 있던 약 15만 톤만 활용해 보름 남짓 버티자는 의견이 제시됐으나, 사태 장기화 우려 속에 '댐 원수'를 자동 보충하기로 결정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단비와 시민들의 절수 노력으로 9월 22일 재난사태가 해제되면서, 도암댐 물의 활용은 곧장 애매한 처지에 놓였다.
김홍규 강릉시장은 이달 23일 기자회견에서 "가뭄이 심해 물을 받기 시작했는데, 당장 가뭄이 끝났다고 중단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우선 예정된 15만 톤은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도암댐 비상방류는 말 그대로 '비상방류'"라며 "관계 부처, 한수원, 수질검증위와 충분히 논의해 사용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강릉시는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대체 수원 확보에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남대천 제2취수장 가동, 홍제·연곡정수장 증설 등을 통해 하루 12만 톤 이상 공급체계를 구축하고, 현재 80% 이상 의존하는 오봉저수지 비중을 3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다.
지역사회에서는 "대체 수원 체계가 자리잡는다면 ‘악몽의 물’로 불린 도암댐 논란도 점차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시장은 최근 재난사태 후속 조치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번 가뭄을 계기로 용수 다변화 체계를 확립하겠다"며 "끝까지 절수에 동참해 주신 시민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wgjh6548@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111일 동안 이어진 강릉의 가뭄은 9월 단비와 함께 막을 내렸지만, 남긴 상처와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 기존 예·경보 체계가 따라가지 못한 '돌발 가뭄'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경고음이다. 강릉 가뭄을 심층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