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겠네 XX 물 틀어"…아침 30분만 물 공급, 강릉 주민들 불만 폭주

'물 사용량 폭증' 30분 물 공급으로 계획 바뀌자 대혼란
아이 다 못 씻겼는데 물 '뚝'…화장실 물도 생수로 해결

9일 오전 7시 40분쯤 단수가 된 강원 강릉 홍제동의 한 아파트 주방 수도꼭지에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2025.9.9/뉴스1 윤왕근 기자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9일 오전 7시를 갓 넘긴 시각. 강원 강릉 홍제동의 한 아파트 단지는 이른 시간부터 분주했다. 주민들은 시계를 보며 수도꼭지를 돌렸고, 얼굴에는 긴장과 초조가 묻어났다. 오전 7시 30분, 예고된 대로 물줄기가 '뚝' 끊기자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이 씻기고 나니 물이 멈췄다"…아침 대혼란

두 아이 아빠 정 모 씨(40대) 부부도 단수의 불편 속에 하루를 시작했다. 전날 저녁 8시 30분부터 이어진 단수는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잠시 풀렸다.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

정 씨 부부는 서둘러 간단한 세수를 하고 밥할 물부터 받아뒀다. 또 마치 군대 훈련소처럼 아이들을 깨웠다. 첫째는 간신히 씻겼지만, 둘째는 잠투정을 부리다 수도가 다시 멎어버렸다. 결국 전날 욕조에 받아둔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빵과 요거트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그릇에는 설거지물을 줄이려는 듯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정 씨는 "빨래 한 번만 해도 1시간은 걸리는데, 30분만 물이 나온다니 막막하다"며 "빨래는 엄두도 못 내고, 화장실 양변기 물도 생수를 부어 내렸다"고 말했다.

베란다 세탁실에는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정 씨는 "두 아이 키우는 집은 하루 빨랫감이 이 정도"라며 "오늘 퇴근 후엔 단수되지 않는 주문진 쪽 빨래방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9일 오전 7시 40분쯤 단수가 된 강원 강릉 홍제동의 한 아파트. 아이가 식사하는 그릇에 비닐이 씌워져 있다. 설거지물 조차 아끼려는 것이다. 2025.9.9/뉴스1 윤왕근 기자
"물 공급 안됩니다" 하자…"씻고 나가야 하는데 XX”

300여 세대가 거주하는 이 아파트는 당초 오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2시간 물을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날 밤 공지가 바뀌며 아침 물 공급은 단 30분으로 줄었다.

같은 시각 아파트 방제실은 주민들의 전화로 쉴 틈이 없었다. 관리자는 "주민들이 불안해서 물을 한꺼번에 틀다 보니 사용량이 폭증했다"며 "200톤 저수조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저수조는 25% 밑으로 내려가면 공기가 차 아파트 설비 등이 고장 난다. 이날 오전 저장량은 26.1%까지 떨어졌다. 불과 1%p 차이로 위기를 넘긴 셈이다. 관리자는 "일부러 물을 안 주는 게 아니다. 조금만 더 썼으면 아예 물을 다시 채울 수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때 방제실 전화가 다시 울렸다. 한 주민은 "왜 물이 안 나오느냐, 원래 8시 30분까지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항의했다. 아마 바뀐 공지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관리자가 사정을 설명하자 주민은 "씻고 빨리 출근해야 한다. 물을 틀어달라"며 울먹이다가 끝내 "미치겠네 XX"라는 욕설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직원의 표정에는 무력감이 짙게 드리웠다.

9일 오전 7시 40분쯤 단수가 된 강원 강릉 홍제동의 한 아파트 세탁기 앞에 묵힌 빨래더미가 쌓여있다 2025.9.9/뉴스1 윤왕근 기자
"처가로 피신"…양동이 든 긴줄 '촌극'

비슷한 불편은 강릉 곳곳에서 속출했다. 내곡동의 238세대 아파트도 전날 예고 없이 단수가 되자 주민들이 양동이를 들고 급수차 앞에 줄을 서는 모습이 연출됐다.

주민 A 씨는 “갑작스러운 단수에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사천면 처가로 피신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강릉 주 취수원의 물 그릇은 채워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이날 오전 8시 기준 강릉의 주 식수원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2.3%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전날(12.4%)보다 더 낮아졌고, 지난 7월 23일 36.7%에서 시작된 저수율 하락은 무려 48일째 이어지고 있다.

오전 잠시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저수율 반등에는 역부족이었다. 현 추세가 이어지면 남은 담수는 20일분 정도다.

9일 오전 7시 40분쯤 단수가 된 강원 강릉 홍제동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급수계획이 불과 30분으로 변경돼 있다. 2025.9.9/뉴스1 윤왕근 기자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정치권도 정치권 연이어 강릉 가뭄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8월 22일 김성환 환경부 장관을 시작으로, 26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27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차례로 강릉을 찾았다. 30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현장을 점검한 뒤 귀경 직후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재난사태 선포 10일째인 이날, 이번엔 야당인 국민의힘 지도부가 강릉을 찾는다. 장동혁 대표를 비롯해 김도읍 정책위의장, 정희용 사무총장, 유상범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동행하며, 특히 강릉 지역구 의원인 권성동 의원도 합류한다. 정치권의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지만, 시민들에겐 여전히 당장 사용할 '30분의 물'이 절실한 상황이다.

9일 오전 7시 40분쯤 단수가 된 강원 강릉 홍제동의 한 아파트. 화장실 욕조에 미리 받아 놓은 물. 2025.9.9/뉴스1 윤왕근 기자
9일 강원 강릉 내곡동의 한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급수계획 안내문.(독자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9.9/뉴스1 윤왕근 기자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