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당하다 살인' 20대 2심서 집유로 감형…정상 참작
법원 “정당방위·과잉방위 아니지만 당시 심신미약 상태”
- 이종재 기자
(춘천=뉴스1) 이종재 기자 = 잔혹한 괴롭힘과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참지 못하고 동창생을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받은 20대가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로 감형받았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제1형사부(민지현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 씨(20)의 항소심에서 원심판결(징역 장기 5년에 단기 3년)을 파기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또 A 씨에게 5년간의 보호관찰을 받을 것과 보호관찰 기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을 것을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 측의 정당방위‧과잉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던 점과 사건 경위를 참작해 이같이 판결했다.
A 씨는 지난해 4월 14일 새벽 삼척의 한 주택에서 중학교 동창생인 B 씨(19)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B 씨는 A 씨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라이터로 머리카락을 지지는 등 3시간가량 가혹행위를 했다.
재판 과정에서 A 씨 측은 A 씨의 행위는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에 해당하며 범행 당시 심신 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1심을 맡은 강릉지원은 A 씨가 견디기 힘든 괴롭힘을 당한 점을 참작해 징역 장기 5년에 단기 3년을 선고했다. 1심은 “인격 말살에 가까운 폭력과 가혹행위를 당한 피고인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괴롭힘을 당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 판결에 불복한 검사 측과 피고인 측은 모두 항소했고, 검찰은 장기 12년에 단기 6년을 구형했던 1심과 달리 A 씨가 성년이 된 점을 고려해 징역 11년의 정기형을 내려달라고 했다.
사건을 다시 살핀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발달 장애인이기는 하나, 죽음의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고, 흉기로 찌를 경우 상대방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살인 범행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봤다.
또 사건 당시 피해자의 가혹행위로 인해 피고인에 대한 부당한 법익 침해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행위는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 측이 주장한 과잉방위에 대해서는 “사건 당시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었던 피해자에게 다가가 갑자기 흉기로 신체를 찌르는 행위는 지나치게 단순히 방위를 위한 적극적인 반경의 의사를 넘어 능동적인 공격의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형법이 정한 과잉 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사건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로 인해 평소 주량을 초과한 술을 강제로 마시게 됐고, 치료제 약을 복약한 상태였으므로 평소보다 더욱 사물 변별 능력과 행위 통제 능력이 저하됐을 것이라고 판단,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해 귀중한 생명을 침해한 죄책을 인정하되, 그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사건 전후의 정황,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 결과를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실형의 선고보다는 그 집행을 유예함으로써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감형 사유를 밝혔다.
재판이 끝난 뒤 A 씨의 아버지는 “이제부터는 아들과 같이 붙어있으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A 씨 측 변호사인 법무법인 비전의 김서현 변호사와 중앙N남부 법률사무소의 박현주 대표변호사는 “목표했던 무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재판부에서 깊게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A 씨가 지역민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서도 같이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A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무료로 변론에 나섰다.
leej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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