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간첩누명 벗었다" 납북 귀환 어부 재심서 무죄

"검사 무죄 구형…불법구금 상태 진술 임의성 없어" 판단 이유
유족 "오랜 누명 벗어 홀가분…국가 상대 민사소송 예정"

1970년대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 고초를 겪다 세상을 떠난 납북귀환어부 장모 씨의 재심이 열린 31일 춘천지법 속초지원 앞에서 장 씨의 유족과 납북귀환어부 피해 진실규명 단체 회원들이 무죄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2022.8.31/뉴스1 ⓒ News1 윤왕근 기자

(속초=뉴스1) 윤왕근 기자 = 70년대 조업 중 납북됐다가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납북귀환어부 1명이 50년 만에 재심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춘천지법 형사1단독(김찬년 판사)은 31일 반공법 위반과 국가보안법 위반, 수산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장모씨(2016년 작고)의 재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1971년 당시 속초항 소속 멸치잡이 어선 '창동호'의 선원이었던 장씨는 같은 해 5월 선장 김모씨 등 6명과 함께 조업에 나섰다가 북한 경비정에 납치된 후 약 1년 만인 1972년 5월 10일 귀환했다.

그러나 장씨와 선장 김씨를 포함한 선원 전원이 반공법 위반과 국가보안법 위반, 수산업법위반 등의 혐의로 처벌받았다. 어선 조업 어로한계선과 군사분계선을 넘어 반국가단체 지배 지역으로 탈출,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 행위를 하고 북한 평화통일위원회 관계자로부터 신사복 등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장씨는 당시 해당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항소가 기각돼 1972년 12월 형이 확정됐다.

장씨 등 선원들은 당시 엄혹했던 우리 수사기관에 339일 간 불법 구금돼 합법적이지 않은 수사방법과 고문을 겪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이들 '창동호' 선원 6명 중 장씨와 행방이 파악되지 않은 A씨를 제외한 선장 김씨 등 4명은 지난 2014년 재심을 신청, 2020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장씨는 당시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다가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납북귀환어부진실규명 모임 등이 검찰에 재심을 요청했고, 올해 3월 춘천지검 속초지청이 관련 자료 검토 후 검사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 이날 열린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불법 구금상태에서 수사가 이뤄졌고, 이와 같이 부당한 신체구속이 장기화된 상태에서 이뤄진 피고인의 법정진술 역시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에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금품수수 등에 대해서도 "당시 북한 정권의 감시 하에서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고 봤다.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전경.2022.8.31/뉴스1 ⓒ News1 윤왕근 기자

이날 재심 재판부가 장씨에 대한 무죄를 선고하자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일부 방청객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재판을 마치고 취재진 앞에선 장씨 동생은 "오랜 누명을 벗어 마음이 홀가분하다"며 "(무죄를 선고한)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동생 장씨는 "형님은 자신이 겪은 일을 동생인 저 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앓다가 돌아가셨다"며 "결혼도 하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장씨는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려고 한다"며 "남아있는 다른 분들(납북귀환어부 및 가족)도 망설이지 마시고 명예회복에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장씨의 무죄 판결로 '창동호 납북 사건' 관련자 6명 중 5명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창동호 사건 가족과 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 시민모임 등은 마지막 남은 A씨와 가족의 행방을 파악해 해당 사건 관련자 전원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