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 '물 건너가나'
정읍과 고창 등 지역 갈등에 '여론조사 방식' 놓고 기념재단 내부 갈등까지
118년 전 동학농민혁명의 기념일 제정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하 기념재단)이 여론조사를 통해 기념일을 정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다.
전북 정읍과 고창, 충남 공주 등 동학농민혁명 관련 지역들의 신경전이 여전한 상황에서 여론조사를 둘러싼 동학농민혁명 단체들의 내분까지 더해지면서 갈등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 논란이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2일 정읍 기념재단에서 열린 설명회부터였다. 이날 설명회는 기념일을 여론조사를 통해 정하자는 내용을 알리는 자리였다.
기념재단은 지난해 4월 전국의 각 기념사업 단체가 추천한 인사로 발족한 동학농민혁명기념일제정추진위원회가 여론조사 방식으로 기념일을 제정하자고 요구해오자 그 후속 조치로 이날 설명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등 설명회에 참석한 상당수 단체들이 "기념일을 역사적인 평가가 아닌 여론조사로 정할 수는 없다"며 기념재단의 입장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갈등을 예고했다.
이어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등 전국 15개 단체는 21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념일 제정 여론조사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또 기념재단의 이용이 사무처장이 여론조사 방식을 주도하고 있다며 이 처장의 퇴진을 주장했다.
◇기념일을 여론조사로 정할 수는 없어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을 둘러싸고 이 같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이유는 정읍과 고창 등 지역별로 기념일 제정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념일 제정 논의는 2004년 3월 5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그해 6월 8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단체협의회'가 학술적 논의를 거쳐 기념일을 제정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특별법이 만들어질 당시 열린 기념일 제정 토론회에서는 무장기포일(4월 25일/음력 3월 20일)과 황토현전승일(5월 11일/음력 4월 7일), 우금치전투일(12월 5일/음력 11월 9일) 등 3가지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고부기포일(2월 15일/음력 1월 10일), 전주점령일(5월 31일/음력 4월 27일), 특별법공포일(3월 5일) 등 약 6개 정도가 현재까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제안돼왔다.
고부와 황토현이 있는 정읍, 무장의 고창, 우금치의 공주, 전주 등이 기념일 제정을 놓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읍과 고창의 갈등이 심하다.
정읍 지역 단체들은 전봉준 장군이 조병갑 군수가 학정을 일삼은 고부관아를 습격하면서 동학혁명의 신호탄을 올린 고부기포일이나 관군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황토현전승일이 기념일로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들어서는 황토현전승일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반면에 고창 지역에서는 무장기포가 전국적인 봉기의 시발점이 됐다는 의미에서 무장기포일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그동안 진행된 기념일 제정 논의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무장기포일을 선택해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별법공포일인 3월 5일을 기념일로 제정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지역간 갈등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기념재단 이용이 사무처장은 지난 12일 설명회에서 여론조사 방식을 택한 이유를 "지난 10여 년 동안 몇 가지 방법으로 해봐도 결론 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역갈등이 혼선 부추겨
기념재단은 7월 초 여론조사로 기념일을 제정할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등 상당수 단체들은 이 처장의 이 같은 주장에 반발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일제정추진위원회의 활동이 일부 단체의 폭력적인 물리력에 방해를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이 처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념일 제정이 답보상태에 머물러왔다는 것이다.
따라 이 처장이 불가피하게 여론조사라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하는 설명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여론조사 방식을 포함한 모든 방식을 놓고 유족과 전문가 모두가 참여해 충분히 논의를 거친 뒤 기념일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간 갈등에다 동학혁명 단체 내부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기념일 제정 논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12일 설명회에 참석한 한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유족이자 후손으로서 부끄럽고 안타깝다"면서 지역 감정 초월을 호소했다.
기념재단 이대봉 기념사업본부장은 "7월 초에 운영위원회를 열어 여론조사를 실시할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여론조사 방식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해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mellotr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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