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메카 꿈꾸는 '완판본'의 고향 전주…정작 책 찍을 곳이 없다

[다시 쓰는 2026 전주 완판본]① 출판산업 고민 깊은 '책의 도시'
지역 출판사, 인쇄 연계 한계에 수도권서 책 제작…'완판본' 명성 무색

편집자주 ...과거 '완영본'과 '방각본'을 찍어내던 조선의 출판 거점 전주는 현재 화려한 도서관과 책 축제로 그 명성을 잇고 있다. 하지만 공간과 행사만으로 '책의 생태계'가 유지될 수는 없다. 동네 책방의 자생력 저하와 지역 내 출판·인쇄 인프라 단절, 불안정한 예산 구조 등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에 전주가 지속 가능한 새로운 '출판 메카'로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5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완판본문화관 ⓒ 뉴스1 유경석 기자

(전주=뉴스1) 장수인 기자 = 조선시대 전주는 서울(경판본)과 함께 인쇄 문화를 양분하던 중심지였다. 수십여년간 완판본을 연구해 온 이태영 전북대 명예교수는 "당시 전주와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한지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었다"며 "전주의 경우 판소리의 감동을 소설로 읽고자 하는 시민들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출판업자들이 한글 고전 소설을 대량 생산했고, 남부시장을 중심으로 서점들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독자의 요구와 지역 내 생산 조건이 맞물려 책이 발행되던 구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백 년이 흐른 2026년 현재, 전주 출판산업의 미래는 밝지만은 않다. '책의 도시'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 파는 민간 출판 생태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도서출판 단잠을 운영하며 독립출판물을 제작하고 있는 서지석 편집자는 지역 내 인쇄 과정의 한계를 지적한다.

서 편집자는 "지역 작가와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가 연결돼 책의 내실을 다잡는 것까지는 전주 내에서 가능하지만, 정작 인쇄는 항상 서울이나 경기 등 타지역 업체와 함께하고 있다"며 "전주 내 인쇄소들이 관공서나 대형 출판사 대비 소량으로 제작하는 지역 출판사와의 거래를 꺼리는 경향이 있고, 견적 문의가 어렵거나 타지역 대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 편집자는 "글은 전주에서 쓰는데 책은 타지역의 인쇄소와 거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책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전주시에서 지역 출판사와 인쇄소를 연계한 지원 정책을 마련하거나 서로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책의 기획부터 제작·판매까지 전 과정을 전주 내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주 동문예술거리 책방 ⓒ 뉴스1 유경석 기자

동네 책방 활성화를 위한 안정적인 예산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현재 전주시는 도서 할인 정책 '책쿵20'을 운영하고 있다. '책쿵20'은 전주시민이 지역 서점에서 책을 구매할 때 정가의 20% 할인 혜택과 함께, 12개 시립도서관에서 대출하고 반납한 책 1권당 50 포인트(원)를 적립 받을 수 있는 서비스로, 지난 2021년 8월에 본격 시작됐다.

문제는 예산이다. 서지석 편집자는 "책쿵 가입자 수와 지역 서점 인증을 받은 서점 수는 매년 늘어가는데, 예산이 부족해 매해 10~11월에 서비스가 중단된다"고 지적했다.

독립서점 '잘익은 언어들'의 이지선 대표도 "책쿵 20 운영이 온라인 서점으로 빠지는 독자들을 동네책방으로 오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단골이 많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 대표 "단점은 딱히 없지만 예산이 좀 더 안정적으로 확보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재 동내 서점들은 공공 도서관 인프라 확충과 맞물려 운영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전주의 공공 도서관 활성화 정책으로 시민들이 도서관을 많이 찾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이에 도서관과 책방이 서로 상생하는 차원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지역 서점들이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개성이 부각되는 서점으로 운영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선 대표는 "현재 전주는 도서관, 북페어, 책방이라는 3요소가 잘 연결돼 있다"며 "이런 것들이 어느 하나 무너지지 않게 지속하는 힘이 앞으로 전주가 책의 도시로 가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oooin9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