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쌓은 경험 나누려"…쌍문동 떠나 무주 택한 74세 베테랑 의사

[지방지킴] 기상석 무주군보건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지방 소아과 공백, 심각성 체감…'시니어 의사 활용' 대안 제언

편집자주 ...[우리 옆의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 지방 소멸을 힘 모아 풀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든든한 이웃을 응원합니다.]

기상석 무주군보건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과장.2026.3.9/뉴스1

(무주=뉴스1) 장수인 기자

"은퇴 후 여유를 가지려 했지만, 제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익숙한 일을 하며 보람을 찾고 싶었어요."

36년간 서울 진료실을 지키며 수많은 아이의 성장을 지켜본 백발의 의사가 전북 무주군에서 다시 청진기를 들었다. 지난 3일 무주군보건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으로 부임한 기상석(74) 전문의의 이야기다.

1988년부터 2024년 7월까지 서울 쌍문동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운영했던 그는 지역 사회에서 '명의'로 통했다. 아이들의 든든한 지킴이었다. 병원 문을 닫는 날 환자들로부터 받은 40여 통의 손편지와 엄마들의 아쉬운 탄식은 그가 어떤 의사였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대학생이 된 아이들부터 3대가 함께 쓴 편지까지 받았다. 엄마들은 와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며 "그때 '내가 과연 이렇게 칭송받을 만큼 잘했을까' 참 많이 반성했다. 그 감동이 다시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회상했다.

서울의 상식이 무주에선 '처음 듣는 이야기'…현장의 뼈저린 체감
기상석 전북 무주군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이 2년여전 자신의 병원 폐원하며 환자들에게 받은 편지.2026.3.9/뉴스1

당초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던 그가 무주행을 선택한 것은 '의료 공백' 현장의 부름 때문이었다. 의정 갈등 속에서 소아청소년과가 없는 지역이 많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주가 아내의 외가가 있는 친숙한 곳인 점도 크게 작용했다.

부임 후 일주일, 그가 마주한 농촌 의료의 현실은 예상보다 더 열악했다. 긴급 상황에 대비한 응급 환자 이송 체계는 잘 갖춰져 있지만, 그를 안타깝게 한 것은 '보편적 의료 지식의 단절'이었다.

기 과장은 "서울에서는 상식처럼 통용되는 이유식 순서 같은 기본 정보조차 처음 듣는다는 젊은 엄마들이 있어 놀랐다"며 "단순한 질환 치료를 넘어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기 과장은 다문화 가정이 많은 지역 특성상, 그는 진료실에서 언어 발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엄마가 한국말에 서툴러도 모국어로 아이의 언어 중추를 자극해 줘야 한다는 조언 등은 그가 36년간 서울에서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축적한 노하우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건강하게"…후배들을 향한 제언
기상석 전북 무주군보건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이 진료를 보고 있다.2026.3.9/뉴스1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많은 환자와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 과장은 자신이 가진 진료 철학을 무주에서도 지킬 예정이다. 항생제 사용을 최소화하고, 원칙에 준해 진료한다는 것이다. 부모와의 신뢰 관계 형성에도 노력할 예정이다.

그는 "엄마와 라포(신뢰 관계)가 형성된다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될 항생제를 남용하지 않고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을 도울 수 있다"고 "여기에서도 이런 점을 최우선에 두고 진료할 예정이다"고 강조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지방 소아과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가 내놓은 해결 방안은 '시니어 의사 활용'이다.

기 과장은 "지방은 문화적 인프라나 의료 환경이 취약할 수 있지만, 자신의 지식을 의료 취약지 아이들에게 베풀어 국가에 보탬이 된다는 것에 가치를 둔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물론 정부 차원의 합당한 보상도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침묵과 경청', 그리고 '역지사지'를 다짐한다는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덧붙였다.

"지역 내 아이의 수가 많고 적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건강한 사회인으로 커서 우리나라의 기둥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환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soooin9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