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그후’ 전북 대학생들의 잇단 시국선언·서울행 탄핵버스

계엄 직후 전북대 교정 곳곳 '계엄 비판' 시국선언문
탄핵버스 탄 시민들은 국회로, 집회 곳곳 '선결제' 문화 등장

4일 전북자치도 전주시 전주객사 앞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비상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2024.12.4/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전주=뉴스1) 장수인 문채연 기자 = 지난해 12월 3일 밤 대한민국은 날벼락 같은 비상계엄 선포로 큰 혼란에 빠졌다. 밤사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시민들은 밤잠을 설쳤고, 날이 밝으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전북에서도 대학생과 시민 등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거리에서 울려 퍼졌다.

가장 먼저 시국 선언문이 내걸려진 곳은 대학가였다. 전북대학교와 원광대학교 등 도내 곳곳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윤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비판했다.

계엄 직후인 12월 4일 전북대 교정에는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을 요구하는 전북대학교 사학과 시국선언문'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걸렸다.

5일 전북자치도 전주시 전북대학교 교정 게시판에 일방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민주주의를 무참히 짓밟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와 시국선언문이 붙어 있다. 2024.12.5/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이후 총학생회를 비롯해 전북대신문, 정치외교학과, 교수회, 직원협의회, 총동창회 등에서도 성명이 잇따랐다. 원광대 학생들도 시국 선언문을 통해 윤 전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생들은 곧바로 연대했다.

전북대를 중심으로 군산대, 군장대, 예수대, 우석대, 원광대, 전주교대, 전주대, 한국농수산대 등 9개 대학 총학생회가 '전북 대학생 비상시국대회'라는 이름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이를 제안한 사람은 전북대 부총학생회장이었던 이정찬 씨(20대)였다.

그는 '목소리는 합치면 합칠수록 힘이 더 커진다'는 생각에 도내 10개 대학 총학생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씨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봉기인 동학농민운동의 전신이 전북이다. 전북이 역사적으로 불의에 맞선 시초 지역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며 "전북의 대학생들은 더 눈치 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임은 탄핵 이후 사실상 해체됐다. 이제는 철저하게 조사할 거 조사하고 처벌받아야 할 것에 대해선 처벌이 이뤄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후배들도 나중에 혹시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12·3 내란 당시 대학이나 거리에서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떠올려 주저 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전북 도청 인근에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탄핵 버스.(검찰개혁전북시민모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북에서는 비상계엄 이후 매주 주말 서울 국회로 향하는 탄핵 버스도 운영됐다.

이 움직임은 263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검찰개혁전북시민모임'이 주도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며 시민들이 똘똘 뭉친 것이다.

매주 10대의 버스에 올라탄 시민들은 버스 안에서 '민주주의를 뺏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버스에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탄 초등학생 아이도 있었다.

이길수 검찰개혁전북시민모임 방장(40대)은 "매주 초등학생 아이가 엄마를 따라 국회 집회에 참여하는 걸 보면서 그 아이에게 정말 좋은 나라,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돌아보면 참 힘들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시간이다. 탄핵은 이뤄졌지만,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 사회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란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다들 좀 느슨해졌지만,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행동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12·3 비상계엄 이후 전북 전주시에서 이뤄진 선결제.

영업 때문에 탄핵 촉구 집회를 지켜봐야만 했던 자영업자들은 마음으로 함께했다.

전주시 객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신 모 씨(50대)는 계엄 이후 주말마다 열렸던 집회를 떠올리면 '선결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탄핵 집회가 시작된 이후 신 씨의 카페에는 선결제 기부가 줄이었다. 선결제 커피를 마신 이들도 선결제를 이어갔다.

신 씨는 "서로 선결제를 하며 한마음으로 집회에 나서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계엄 직후 경기가 완전히 얼어붙으면서 거리에 사람도 안 다니고 장사가 안돼서 너무 힘들었다. 우리끼리는 '코로나 가니까 윤석열 왔다'는 농담도 했다"며 "집회 참여한 분들이 쉬러 카페에 오다 보니 문을 열어놓느라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지 못한 게 미안하다. 그래서 화장실도 개방했다"고 말했다.

이어 "탄핵 이후 속이 시원하지만, 아직도 재판이 더디게 진행되는 걸 보면서 불안감을 느낀다"며 "아직 불안정한 것들이 많지만 관련자들이 정당한 죗값을 받고,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를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soooin9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