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하나에…어쩌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각박해졌을까?[사건의 재구성]
'1050원 간식' 절도 혐의…1심 '벌금 5만원' 뒤집고 항소심 무죄
재판부 "절도 고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 강교현 기자
(전주=뉴스1) 강교현 기자 = "재판부의 온정, 모두의 관심과 염려 덕에 무죄 선고를 받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2024년 1월 전북 완주군의 한 물류회사 사무실. 탁송기사들이 모두 떠난 새벽시간 사무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그 정적을 깬 것은 A 씨(41)의 발걸음 소리였다. 그는 보안 협력업체 직원으로 이곳에서 20여년간 근무해 왔다.
야간 근무 중이었던 A 씨는 평소처럼 사무실을 돌며 소등 상태와 냉난방기 작동 여부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사무실 한편의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가 꺼낸 것은 450원짜리 초코파이와 600원짜리 커스터드, 총 1050원어치 간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 행동이 전국민의 관심을 불러올 '절도 사건'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냉장고 속에서 꺼내 먹은 간식은 곧 사건이 됐다.
A 씨는 물류회사 관계자의 고발로 수사를 받았고, 기소까지 됐다. 당초 A 씨는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벌금 액수 자체는 작았다. 하지만 A 씨는 생계를 걱정해야만 했다. 절도죄로 유죄가 확정되면 경비업법에 따라 직장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냉장고에서 꺼내 먹은 1050원어치 간식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수는 없었던 A 씨는 결백을 주장하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A 씨의 절도 혐의를 인정하며 벌금 5만 원을 선고했다.
A 씨는 곧바로 항소했다.
법정에 선 A 씨는 '평소 냉장고에 있는 간식을 가져다 먹으라는 말을 듣고 꺼내 먹었다. 절도의 고의가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 같은 내용은 세간에 알려졌고 큰 논란을 불러왔다. '과연 기소까지 할 사안인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2심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도 "(세상이) 각박한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검찰은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검찰 시민위원회를 열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시민위원 12명 중 다수는 '선고유예' 구형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도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A 씨에게 결국 '선고유예'를 구형했다.
선고유예는 유죄가 인정되지만 형의 선고를 미뤄줬다가 2년간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형 선고가 없도록 해주는 제도로, 유예기간이 지나면 형의 효력이 사라져 처벌받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죄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새벽 시간대 탁송기사와 보안업체 직원들이 냉장고 간식을 자유롭게 이용해 온 관행이 있었고, 냉장고 접근이 제한된 공간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다수의 직원이 '탁송기사들로부터 배고프면 간식을 먹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토대로 이 같은 정황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사무실 구조와 냉장고 위치, 간식의 용도와 그 가격, 사무직원과 탁송기사, 보안업체 직원들의 근무 형태와 업무 내용 등을 종합해 보면 피해자 측이 '탁송기사들은 허락 없이는 냉장고를 열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근무 형태와 실제 이용 실태에 비춰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설령 탁송기사들에게 냉장고 물품을 처분할 권한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으로서는 탁송기사들이 간식을 제공할 권한이 있다고 충분히 착오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피고인이 간식을 가져가도 된다고 오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물건을 가져간다는 절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직후 A 씨 변호인은 취재진과 만나 "피고인이 그간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 왔고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에 검찰도 선고유예를 구형해 위험부담이 줄어든 상태였다"면서 "검찰이 상고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대법원에서도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선고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던 A 씨도 입장문을 통해 "재판부의 온정, 모두의 관심과 염려 덕에 무죄 선고를 받게 됐다"며 "저를 포함해 동료 직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돼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kyohyun2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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