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 한 마리가 부른 참극 [사건의 재구성]

양봉업자 살해·유기한 70대…1심 20년→항소심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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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뉴스1) 강교현 기자 = "아버지와 연락이 안 돼요."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월 28일 오후. 전북 정읍시에서 한 통의 112 신고가 접수됐다. 평소 양봉업을 하며 홀로 움막에서 지내던 A 씨(77)와 연락이 끊겼다는 아들의 신고였다.

경찰은 즉시 4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 A 씨 농장과 인근 야산 일대를 수색했다. 수색은 사흘간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수상한 정황을 포착했다. 농장에 있던 A 씨 차량 내부는 진흙으로 범벅돼 있었고, 블랙박스는 사라진 상태였다. 단순 실종이 아닌 강력 사건일 가능성이 커지자, 경찰은 곧바로 수사망을 좁혀갔다.

얼마 뒤 경찰은 B 씨(74)를 긴급 체포했다. 유력 용의자였던 그는 경찰의 추궁 끝에 범행을 자백했다. A 씨를 살해한 뒤 농장 인근 야산에 시신을 묻었다는 것이다. 자백대로 A 씨는 50㎝ 깊이의 땅속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두 사람의 갈등은 '여왕벌 한 마리'에서 비롯됐다. 과거 A 씨로부터 벌통을 구매했던 B 씨는 "벌통에 여왕벌이 없었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이후 B 씨는 1월 27일 오전 죽은 벌을 대신할 벌을 구하기 위해 A 씨 농장을 찾았다가 외출했다 돌아온 A 씨와 마주쳤다.

여왕벌 사건으로 감정이 상해있던 A 씨는 B 씨를 향해 "나 없을 때 몰래 벌을 훔치려 온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A 씨의 추궁에 언쟁이 오갔고, B 씨는 불쾌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쾌함은 이내 분노로 번졌다. A 씨가 자기를 절도범으로 신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머리를 스쳤다.

결국 B 씨는 둔기를 챙겨 다시 농장으로 향했다. "나를 오해하는 것 같으니, 오해를 풀자"고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냉담했다.

"나는 벌 도둑하고는 상대하지 않는다."

이 말은 들은 B 씨는 참아왔던 분노를 터트렸다. 그는 준비해 온 둔기로 A 씨의 머리와 가슴을 27차례 내려쳐 살해했다. 이후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하고 블랙박스와 휴대전화도 숨겼다.

체포된 B 씨는 입감된 뒤 속옷에 숨겨둔 살충제를 마셔 병원에 이송됐다가 나흘 만에 퇴원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B 씨에게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징역 30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양형부당을 사유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계획적인 후속 범행을 저질렀다"며 "특히 암매장당한 피해자의 부검 결과를 살펴보면 입과 기도 등에서 흙이 발견돼 사망할 때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의 차량 블랙박스와 휴대전화를 은닉하고 수사기관에서도 범행 동기와 방법 등을 다르게 진술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축소하려 했다. 피고인이 진정 반성하고 후회하는지 의문"이라며 원심을 깨고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이후 B 씨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이 형은 확정됐다.

kyohyun2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