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질 안 와도 벌초는 해사주" 옛말…사라지는 제주 벌초 문화
2002년 18% 였던 '화장률' 가파른 증가세…2040년 95% 전망
자연장지는 인기, 공설묘지는 '텅텅'…매장률 16.7%
- 고동명 기자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추석 명절을 10여일 앞둔 9월 셋째 주. 제주 들판과 산자락에 울려 퍼지는 '윙윙'하는 예초기 소리와 매캐한 기름 냄새가 벌초 시즌이 돌아왔음을 알린다.
제주에서는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해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조상 묘의 잡초를 베어 정리하는 벌초 철이 시작된다.
"맹질(명절)에는 안 와도 벌초는 와야 한다", "식게(제사)는 안 먹어도 벌초는 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도민들에게 벌초는 중요한 전통이자 문화다. 2000년대 초반까지 도내 초·중·고교에는 이른바 '벌초방학'이 있었다. 벌초를 위해 임시로 학교 문을 닫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조상과 효의 의미를 가르친다는 취지다.
제주 벌초는 차례와 제사를 함께 지내는 8촌 이내의 친척들이 모여 고조부 묘까지 벌초하는 '가족 벌초'와 문중 친척들이 모여 윗대 조상 묘를 벌초하는 '모둠 벌초'까지 보통 2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모둠 벌초 날에는 평소에 왕래가 거의 없는 먼 친척은 물론 타지역에 거주하는 친척들까지 한자리에 모인다. 공동체 문화를 중시하는 제주에서 벌초는 그만큼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벌초가 끝나면 봉분 앞에서 간단히 제를 올리고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서로 안부를 묻고 아이들은 메뚜기와 사마귀 등 평소 보기 힘든 풀벌레를 잡으며 뛰논다.
그런데 이같은 풍경은 점차 과거형이 돼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장례문화다. 제주지역 화장률은 2002년 18.3%에 불과했지만 2010년 54.8%를 기록, 처음 매장률을 넘어섰다. 2023년에는 83.7%까지 높아졌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2040년에는 화장률이 95%에 이를 것으로 제주도는 전망하고 있다.
처음부터 매장이 아닌 화장을 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고 묘를 개장해 화장한 뒤 자연장으로 옮기는 경우도 늘면서 '관리해야 할 묘'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가족 형태 변화도 벌초 문화를 바꾸는 요인이다. 과거처럼 여러 세대가 같은 지역에 모여 살지 않고 친척 간 왕래도 줄면서 가족이 모여 묘를 관리하는 전통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도내 공설 자연장지 4곳 중 이미 만장된 곳도 나왔다. 2만 381기를 안장할 수 있는 어승생 한울누리공원은 2022년 만장됐다. 4000기 안장 규모로 조성된 서귀포 추모공원도 만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도가 지난해 도내 공설묘지 14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매장 가능한 규모는 4만 15기이지만 분묘 수는 전체의 16.7%인 6691기에 불과했다.
일부 공설묘지는 매장률이 3%에 불과한 수준이다.
도는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일부 공설묘지를 자연장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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