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박쥐, 한겨울 동면에서 깨어나 먹이활동…제주 해양성 기후 탓

제주 세계유산본부, '한라산 동굴 박쥐 생태조사' 중간 분석 결과
'겨울 동면' 육지 박쥐와 달라…기후변화 따른 생활사 변화 단서

3일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 인근 해발 700m에 위치한 용암동굴인 '구린굴' 천장에 박쥐가 매달려있다.2025.11.3 ⓒ 뉴스1 고동명 기자

(제주=뉴스1) 강승남 기자 = 한라산 박쥐가 한겨울에도 포근한 밤이면 겨울잠에서 깨어 먹이 사냥에 나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겨울철 동면을 이어가는 한반도 육지 박쥐와는 다른 모습으로, 제주 박쥐의 생태적 특성과 기후변화에 따른 생활사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한라산 동굴 박쥐 생태조사' 학술용역의 중간 분석 결과 한라산천연보호구역 내 구린굴·평굴과 관음사 계곡 일대 박쥐의 겨울철 간헐적 먹이활동과 계절별 서식지 이용 특성을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2023년부터 이어온 한라산 장기 생태모니터링의 연장선에서 이뤄지고 있다.

세계유산본부는 서식지 교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박쥐를 직접 포획하지 않고 생물음향 모니터링과 현장조사를 병행했다. 또 2023년부터 2025년까지의 자료를 같은 기준으로 다시 정리해 비교·분석했다.

관음사 계곡에서 기록된 초음파 가운데 박쥐가 먹이를 잡을 때 내는 '먹이활동 신호(feeding buzz)'를 분석한 결과, 12월에는 먹이활동이 비교적 빈번했고 1~2월에도 기온이 높은 밤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활동이 확인됐다.

이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에 사는 제주 박쥐가 겨울에도 일시적으로 깨어나 먹이활동을 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기온과 박쥐 활동을 장기간 함께 기록하면 기후변화에 따른 동면기간과 먹이활동 시기의 변화를 조기에 감지하는 생태지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계절에 따라 동굴과 계곡을 다르게 이용하는 특성도 드러났다.

동굴은 겨울잠을 자거나 새끼를 낳아 기르는 공간으로, 인근 계곡과 숲은 먹이터로 이용됐다.

평굴은 겨울철 관박쥐가 최대 약 1900개체까지 모이는 주요 동면처로 확인됐다.

구린굴은 봄·여름철 관박쥐·긴가락박쥐·큰발윗수염박쥐가 최대 약 1500개체까지 모여 새끼를 낳고 기르는 출산·포육 장소로 조사됐다. 구린굴에서는 과거 희귀종인 황금박쥐도 목격된 바 있다.

인근 관음사 계곡과 산림은 이들의 주요 취식지였다.

박쥐가 동굴과 계곡·산림을 오가며 하나의 생태적 연결망을 이루고 있는 만큼, 동굴뿐 아니라 주변 계곡과 산림까지 함께 아우르는 보전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박쥐를 포획하거나 서식지에 반복해 드나들지 않고도 초음파를 통해 출현 종과 활동 시기, 먹이활동 빈도를 장기간 정량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세계유산본부는 용역이 끝날 때까지 계절별·종별 음향자료와 동굴의 온도·습도, 외부 기상자료를 종합 분석한다.

최종 결과는 박쥐가 민감한 동면과 출산·포육 시기의 동굴 관리방안과 동굴·산림·계곡을 잇는 보전관리 체계 마련에 활용된다.

국내 박쥐 음향분석과 장기 모니터링 기준을 구축하는 데도 쓰일 예정이다.

연구진은 "한겨울의 간헐적 먹이활동은 제주 박쥐의 생태적 특성과 기후변화에 따른 생활사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말했다.

ks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