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히 껍질 벗겨졌던 후박나무, 새살 돋게 한 '나무의사'
박치관 한국나무의사협회 제주지회장, 200그루 살려
"베어내는 게 능사 아냐…치료로 보전 선례 남기고 싶어"
- 고동명 기자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병들고 아프다고 베어내기보다는 최대한 치료해서 숲을 보전해야 합니다."
지난해 후박나무 집단 박피 사건이 발생한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의 한 임야에서 뉴스1 제주본부와 만난 박치관 한국나무의사협회 제주지회장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후박나무가 대부분 말라 죽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후박나무 치료를 도맡은 박 지회장은 "지금은 새 조직이 이어지면서 물과 양분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5~6월 조경업자 A 씨가 후박나무 400여 그루의 껍질을 무단으로 벗겨낸 일이 있었다. 후박나무 껍질이 몸에 좋다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을 믿고 벌인 범행이었다. 껍질을 판매해 수익을 챙긴 A 씨는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사건 직후 숲을 찾은 전문가들은 '살릴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나무는 껍질 안쪽의 조직을 통해 물과 양분을 이동시키는데, 이 부분이 크게 훼손되면 대부분 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지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습한 기후와 숲이 만들어내는 그늘, 무엇보다 후박나무의 강한 생명력을 고려하면 일부는 살릴 수 있다고 봤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나무의사는 병해충이나 생육 이상이 생긴 나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을 한다.
박 지회장은 치료 과정은 사람의 상처를 돌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먼저 훼손 부위를 소독한 뒤 황토 성분의 보호제를 발랐다. 직사광선을 차단해 수분 증발과 조직이 마르는 것을 늦추기 위한 것이었다. 아울러 영양제를 주입하며 균과 해충이 침입하지 않도록 관리했다.
박 지회장은 "사람이 다치면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른 뒤 붕대를 감듯 나무도 비슷한 원리로 치료한다"며 "조직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1년 동안 이어진 치료 끝에 피해 나무의 절반인 약 200그루는 새 조직을 만들며 살아남았다.
거칠 게 패였던 줄기에는 새살이 돋았고, 잎은 다시 짙은 녹색을 띠기 시작했다. 뿌리에서 잎까지 물과 양분이 이동하는 통로가 다시 연결된 것이다.
박 지회장은 대규모 박피 피해를 본 나무를 벌목하기보다 치료 가능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고 강조했다.
박 지회장은 이런 선례를 남기기 위해 무보수로 후박나무 치료에 참여했다.
그는 "치료를 통해 숲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앞으로도 베어내는 복구보다 살릴 수 있는 나무를 먼저 살리는 방향으로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상 외래 병해충이 가장 먼저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상기후까지 겹치면서 수목 관리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현재 제주에서 활동하는 나무의사는 박 지회장을 포함해 2명뿐이다.
그는 "제주는 공항과 항만을 통해 외래 병해충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지역이어서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며 "지역 환경과 수종을 잘 아는 나무의사를 꾸준히 양성하고 일자리도 함께 마련해야 숲과 농업을 함께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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