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황금박쥐' 산다는 2만년 전 형성된 제주 용암동굴
한라산 해발 700m '구린굴'…"박쥐 군락지로 유명"
- 고동명 기자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위를 조심하세요. 박쥐 떼가 매달려있습니다. 부딪치지 않게 고개를 숙여주세요."
제주세계유산본부 안웅산 학예연구사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어림잡아 50~60마리쯤은 돼 보이는 박쥐무리들이 동굴 천장에 빽빽하게 모여있었다.
빛을 비추자 박쥐들은 두어마리가 꿈틀거릴 뿐 다행히 영화에서처럼 떼를 지어 사람들에게 날아오지는 않았다.
3일 한라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용암동굴인 '구린굴'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2025 제주 국가유산방문의 해'를 맞아 구린굴을 민간에 특별개방하고 있다.
관음사 탐방로 인근 해발 700m에 위치한 구린굴은 백록담이 분출하면서 나온 용암이 한라산 북사면을 따라 흘러내려 형성된 용암동굴이다.
한라산 고지대 용담동굴의 특징을 잘 보여주지만 탐방 난도는 높은 편이다. '구린굴'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동굴길이 험해서 붙여졌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호리병 구조인 구린굴의 전체 길이는 442m이며 이 중 200m 구간을 탐방할 수 있다.
구린굴은 과거 석빙고로 활용됐다는 문헌이 남아있고 주변에는 집터와 숯 가마터의 흔적도 보이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구린굴 인근 용암류의 하부의 고토양층과 백록담 분화 내부 퇴적층의 방사성탄소연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형성 시기는 약 2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동굴 하류인 진입로 너비는 대략 3m지만 중간부터는 폭과 높이가 약 2m 이내로 성인 남성 2명이 겨우 함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아지는 구간도 있다.
그러나 동굴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상류 구간은 폭 4m, 높이 7m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고종석 세계유산본부장은 "구린굴은 위아래·좌우로 서로 얽혀있는 복잡한 구조로, 미로형 용암동굴의 형성 과정뿐만 아니라 용암의 흐름 과정을 역으로 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린굴은 또 다른 한라산 용암동굴인 '평굴'과 함께 대표적인 도내 박쥐 군락지다. 제주도는 3년 전부터 이곳에서 박쥐의 서식환경과 생태 특성을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구린굴에만 현재 1500마리 이상의 박쥐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면 이들의 조상은 동굴이 형성된 2만년 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야행성인 박쥐는 먹이활동을 통해 생태계 순환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이들의 생태 특성 등은 지금까지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특히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452호에 해당한 붉은박쥐(황금박쥐)의 서식 확인된 동굴이다.
다만 이날 탐방에서는 개체수가 워낙 적은 탓인지 아쉽게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박쥐 서식지답게 일부 구간 바닥에는 박쥐 배설물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등산화로 밟으면 복숭아뼈까지 '푹'하고 들어갈 정도니 그 양을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구린굴이라는 이름에는 박쥐와 박쥐 배설물도 한몫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안웅산 연구사는 "오늘 구린굴에서 목격된 박쥐들은 '관박쥐'라는 종으로 매달려서 얼굴을 싸맨 모습이 관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긴날개박쥐'도 서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린굴 탐방은 오는 15일까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하루 2회씩 총 8회이며 회당 10명 이내로 예약해서 참여할 수 있다. 예약 등 자세한 내용은 제주 국가유산방문의 해 누리집에서 확인하면 된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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