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100여마리 이사한 사연…'우리 언제 돌아갈 수 있죠?'
[민간동물보호시설 양성화의 그림자①]
'대규모 시설 및 운영 기준' 또 다른 음지 만드는 건 아닐까
- 홍수영 기자
(제주=뉴스1) 홍수영 기자 = 지난 8월 21일 제주시 한림읍 소재 '한림쉼터'. 유기견 109마리가 하나둘 차량에 실렸다. 지난 2016년부터 머물렀던 보금자리를 떠나는 날이었다. 임시보호소로의 이사는 며칠이 걸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보호법을 개정해 민간동물보호시설 양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운영되던 시설들을 신고하게 함으로써 제도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목적이다.
이에 따라 100마리 이상 유기견을 보호 중인 한림쉼터는 내년 4월까지 민간동물보호시설로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서류만 제출하면 되는 일은 아니다. 관련 시행규칙에 따른 시설 규칙과 운영 기준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시행규칙에 따르면 민간동물보호시설에는 보호실, 격리실, 사료보관실을 구분해 설치해야 한다. 또 냉난방, 출입통제장치, 담장이나 울타리, 급수 및 배수시설, 잠금장치가 있는 냉동시설 등이 필수시설로 명시됐다.
이같은 기준은 '약 600㎡(약 180평) 규모의 건물 2동 건설'이란 과제로 남겨졌다. 이를 위해 한림쉼터는 올해 '민간동물보호시설 환경개선 지원사업'에 신청해 대상자로 선정됐다. 첫 단추는 끼운 셈이지만 매 순간 고비를 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림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사단법인 '제제프렌즈' 관계자는 "기존의 시설을 모두 허물고 토지용도변경 후에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어렵게 임시보호할 장소를 구했지만 전기, 수도가 없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대규모 이사까지 한 끝에 한림쉼터는 지난 9월30일 건축인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언제 완료될지 모르는 새로운 쉼터 조성 전까지 유기견 109마리는 생수 후원 등으로 버티고 있다. 이곳 유기견 대부분은 최초 설립자가 있던 2016년부터 보호 중이다. 노견, 중대형견이 많아 입양 문의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제프렌즈의 홍난영 대표는 "보호 중인 동물들을 배려해 최대한 터를 옮기고 싶지않았지만 행정절차상 안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최근 아픈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유로 제제프렌즈의 마음은 급하다. "내년 봄이 오기 전까지" 준공해 유기견들에게 따뜻한 봄을 안겨주고 싶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후원금 모금을 위해 기부챌린지, 티셔츠 및 달력 등 굿즈 판매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후원금 약 6000만 원을 모으고 지원사업 보조금을 받았지만, 결국 홍 대표는 1억 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됐다. 홍 대표의 걱정은 단순 돈 문제만은 아니다.
홍 대표는 "새로운 보호시설을 마련한 후에도 문제다. 시설관리를 위한 인력, 비용이 고민"이라며 "기존 시설에서는 전기세가 1~2만 원이었다. 그러나 냉난방기 8개를 설치해야 하는 새 시설에서는 전기세가 감당되지 않을 것 같아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현 한림쉼터는 제제프렌즈 이사진을 포함해 정회원 12명과 봉사자들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뿐만 아니라 제주도내 민간동물보호시설 대부분이 수익구조 없이 후원금과 자원봉사로 유지 중이다. '양성화'라는 명목하에 내건 대규모 시설 및 운영 기준이 또 다른 '음지'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이유다.
gw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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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제주지역에선 한 해 약 4000마리의 동물들이 버려지고 있다. 내년부터는 민간시설 신고제가 전면 확대 시행된다. 그러나 현장에선 신고제가 오히려 유기동물들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