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운전자 없이 씽씽…제주 자율주행 버스 '일출봉GO' 타 보니
섭지코지~성산일출봉 왕복 9.3㎞ 시속 40㎞ 이하로 서행
뚜벅이 여행객 "편하고 좋아요"…C-ITS 추가 구축 필요도
- 오미란 기자
(서귀포=뉴스1) 오미란 기자 = 푸른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던 22일 오전 서귀포시 성산읍 휘닉스 아일랜드 주차장. 귀여운 성산일출봉 그림 아래 '제주성산일출봉지구 자율주행 셔틀버스 정류장'이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 앞으로 버스 한 대가 천천히 들어섰다. 이날 시범 운행을 시작한 관광형 자율주행 버스 '일출봉GO(고)!'다.
㈜롯데이노베이트가 개발한 이 버스는 운전석이 없는 친환경 자율주행 셔틀이다. 자율주행 기술은 국제자동차기술협회(SAE International)가 정한 기준에 따라 레벨 0부터 5까지 총 6단계로 나뉘는데, 이 버스에는 운전자가 아예 개입할 필요가 없는 '레벨 4(고도 자율주행 단계)' 기술이 적용됐다. 모든 돌발상황에 차량 스스로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눈앞에서 본 '일출봉고'는 작고 깜찍했다. 버스 자체가 안전관리자를 제외하고 단 8명까지만 탑승할 수 있는 크기로 제작됐고, 외부는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과 한라봉, 해녀를 형상화한 ㈜제주애퐁당의 캐릭터 '고르방', '부라봉', '양퐁당'이 래핑돼 있었다.
버스 출입구에 설치된 태블릿에 QR코드를 스캔하니 '승차입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QR코드는 이날 새벽 1시에 열린 웹사이트에서 사전 예약 후 발급받았다. 안전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좌석에 앉고 안전벨트를 매니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출봉고'는 섭지코지가 있는 휘닉스 아일랜드에서 출발해 신양해수욕장과 광치기해변을 거쳐 성산일출봉 앞(성산포수산업협동조합)까지 갔다가 그대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운행했다. 왕복 9.3㎞ 구간을 순환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45분. 임시 운행 허가 기준에 따라 시속 40㎞ 이내로 천천히 운행하다 보니 승용차보다 2배 정도 시간이 걸렸다.
주행감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운행구간 자체가 경사도가 거의 없는 평탄한 구간이기도 하지만, 신호등이나 과속 방지턱 등을 앞두고 미리 속도를 줄여 차체의 흔들림을 최소화하려는 주행이 눈에 띄었다. 큰길은 물론, 이면도로, 사거리를 지날 때나 우회전 신호 시에도 주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여기에는 외부에 달린 카메라 4대와 라이다(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6대가 제 역할을 했다. 모서리마다 달린 카메라가 도로 환경 전반을 살피고, 각 모서리와 상단에 설치돼 있는 라이다가 주변 사물까지의 거리와 방향, 속도 등을 정밀하게 측정하면서 안전한 주행을 도운 것이다.
보다 안전한 주행을 위해 버스 내부에는 안전관리자도 배치돼 있었다. 돌발상황 발생 시 수동운전을 하는 인력이다. 이날 주행 중에는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주차장이나 잡풀이 늘어져 있고 불법 주정차된 차량이 많은 이면도로에서 한때 수동운전이 이뤄졌다. 시범운행 첫날인 만큼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첫 탑승객인 관광객 김수연 씨(26·서울)는 "덜컹거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안정감이 있어서 놀랐다"며 "일반 버스를 타면 근처 정류장에 내린 뒤에도 30분 정도는 걸어야 섭지코지까지 갈 수 있는데 정말 편하게 왔다. 잘 운영돼서 확대되면 나 같은 '뚜벅이 여행객'들이 애용할 것 같다"고 했다.
시범운행 기간은 12월19일까지다. 이때까지 '일출봉고'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15분까지 약 1시간 간격(점심시간 제외)으로 총 6차례 운행한다. 빈 좌석이 있다면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아도 바로 탑승할 수 있다. 단, 만 13세 미만 아동은 반드시 보호자와 함께 탑승해야 한다.
현재 이용요금은 무료다. 다만 시범운행이 끝난 뒤 성과평가를 거치면서 유상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일출봉고'와 같은 자율주행 셔틀이 교통이 혼잡하고 신호체계가 복잡한 관광지에서 렌터카 이용을 줄이고 교통사고율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기대를 실현하려면 인프라를 더 보완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롯데이노베이트 모빌리티서비스 담당 정숙경 프로는 특히 차세대 지능형 교통 시스템 'C-ITS(Cooperative Intelligent Transport Systems)'가 필요하다고 했다. C-ITS는 차량이 주행 중 다른 차량 또는 도로에 설치된 인프라와 통신하면서 주변 교통상황과 급정거, 낙하물 등 위험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경고해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정 프로는 "시범운행 구간에 C-ITS가 더 구축되면 안전관리자의 개입 정도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오영훈 도지사는 지난 19일 열린 '일출봉고' 시승식에서 "2020년부터 시작된 제주의 자율주행차 사업이 레벨 4의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발전했다"며 "일출봉고가 성산지역 관광을 재도약시키는 새로운 명물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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