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이주민 7명'인 제주 마을, 화합 이뤄낸 비결
전국 최초 기업참여형 생태계서비스지불제 서호마을
"기업은 ESG 실현·주민은 마을자원 관리"
- 고동명 기자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 더위 속에 제주 서귀포시 서호동의 옛 마을목장에서 10여명의 주민이 한손으로는 빽빽한 칡넝쿨과 잡목들을 제거하고 또다른 한손으로는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이 목장은 60여년 전 감귤 농사가 마을의 주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7000평(2만3431㎡) 넘는 땅은 오랜 기간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수풀만 무성했다.
오시창 서호마을 회장은 "그동안 우리 마을목장은 비교적 생태계 교란종에 안전한 곳이었지만 조만간 인근에 도로가 들어서면 자동차 바퀴에 묻은 씨앗들이 유입돼 순식간에 교란종에 점령당할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호마을회는 올해부터 제주형 생태계서비스지불제(PES)에 참여했다. 제주형 PES는 산림·하천·습지 등 생태계를 주민이 직접 관리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행정이 주도하던 보전 정책을 주민 중심으로 전환해, 생태계 관리와 공동체 활성화를 동시에 꾀한다.
2013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40여 개 마을이 PES에 참여했다. 주민들은 숲 정비, 외래종 제거, 곶자왈 보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생물다양성 보전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서호마을은 기존 행정 참여에서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기업이 마을과 손잡고 PES에 참여해 주목받았다.
김현숙 서호마을 부녀회장은 "처음에는 어떤 식물을 제거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대는 분도 있었다"며 "첫날에는 열정이 앞서 두 분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PES참여를 계기로 마을목장을 바라보던 주민들의 인식은 점점 달라지고 확고해졌다고 한다.
김 부녀회장은 "수십 년을 살면서도 마을 생태계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는데, 직접 가꾸다 보니 왜 보전해야 하는지 알겠더라. 주민들의 생각 자체가 변했다"고 했다.
오 회장은 "우리 마을 땅을 우리가 관리하면서 비용까지 받으니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서호마을은 최근 10여 년 사이 혁신도시 조성으로 인구 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현재 주민 6300여명 중 75% 이상이 이주민이고, 기존 거주민은 25%에 불과하다. 연령대도 이주민은 30~40대가 많고 선주민은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서호마을뿐만이 아니다. 제주 이주 열풍이 불면서 지역에는 이주민과 선주민간의 갈등이 심심치 않게 표출되기도 했다.
오 회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이주민과 선주민의 화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생태계지불서비스제도 그런 활동 중 하나다.
방치됐던 숲은 공동체를 다시 이어주는 매개가 됐다. 함께 마을자원을 가꾸며 유대가 깊어진 것이다.
오 회장은 "마을 자원을 잘 관리해 주민이 주도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언젠가는 아이들이 마을을 떠올리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고향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서호마을의 PES는 전국 처음으로 기업이 참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도외 기업인 ㈜리브와 ㈜아세즈는 마을에 2년간 1200만 원의 자금과 물품을 지원하고, 임직원들이 직접 생태계 보전에 참여한다.
리브는 국내 브랜드의 물류·통관·인허가·현지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포괄적으로 제공해 글로벌 시장 성장을 돕는 기업이다.
리브의 '리 바이브(RE:VIVE ) 프로젝트는 유통기한이 임박했지만 사용 가능한 제품을 폐기 대신 ESG 기부로 전환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박규민 리브 ESG경영지원팀장은 "주민들이 직접 생태를 지키는 활동을 기업이 응원한다는 점이 마음을 움직였다"며 "단순 후원이 아니라 주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땀 흘리며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PES활동를 통해 '환경 보전, 마을 신뢰, 기업 책임'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겠다"고 했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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