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아들 좀 찾아주오. 시신이라도 찾아야 가슴에 묻지…”

2010년 ‘필리핀 악마’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실종된 5대 독자 기다리는 애끓는 모정
공군 중령 출신 윤철완 필리핀서 5년째 실종…아버지 정신병원 입원, 가정 풍비박산

2010년 8월 필리핀 여행을 떠났다가 "필리핀 악마"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된 공군 중령 출신 윤철완(실종 당시 37세)씨의 공군사관학교 시절 모습. 2015.05.28/뉴스1 ⓒ News1 강남주 기자

(인천=뉴스1) 강남주 서승우 기자 = “제발 좀 내 아들 좀 찾아주오…”

‘필리핀 악마’ 최세용(48) 일당에게 납치된 아들의 생사를 5년 동안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A씨(인천 서구)가 27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꺼낸 첫 마디다. A씨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이내 넋을 놓았다.

공군 장교 출신인 A씨의 아들 윤철완(실종 당시 37세)씨는 지난 2010년 8월 필리핀으로 여행을 간다며 집을 나서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주 후면 돌아오겠다던 아들이 연락이 없자 A씨는 2010년 9월24일 인천 서부경찰서에 실종신고를 냈다. 아들이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된 사실을 안 것은 이로부터 1년 후.

A씨는 “2011년 9월경 ‘아들을 납치했으니 돈을 보내라’는 최세용 일당의 전화를 받았다”며 “이 전화 때문에 아들이 납치된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A씨는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에 이리저리 돈을 모아 최세용 일당에게 3500여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최세용 일당은 아들을 풀어주지 않았다.

A씨의 아들이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된 것은 여행 직후다.

윤씨는 여행 일주일째 자신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지갑을 잃어버렸다. 집에 있는 자신의 카드 앞면을 복사해 이메일로 보내 달라”며 말하고 연락이 두절됐다. 여동생이 보낸 카드로 최세용 일당은 3000만원을 대출 받았다.

A씨는 “아들이 전화한 사실을 나중에 딸에게 들었다”며 “동생에게 부모님이 걱정하실 수 있으니 말하지 말라고 했다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들이 위험한 상황에 빠졌는데, 가족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며 자책했다.

◇수사당국, 5년째 ‘좀 더 수사해야’ 되풀이

수사당국은 A씨의 실종신고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들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A씨는 아들을 납치했던 최세용 일당들이 검거되거나 우리나라로 송환됐을 때 아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매번 실망으로 돌아왔다.

지난 13일 마지막 일당이 송환됐을 때 역시 다른 때와 다르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하는 수사기관 관계자는 매번 ‘좀 더 수사를 해야된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A씨는 “결혼 한 뒤 평생을 가정주부로 살아온 제가 수사기관 선생님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기다리다 지쳐 대법원에 찾아가 내 아들 좀 찾아달라며 소란을 피운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토로했다.

수사당국은 최세용 일당이 2008년 3월부터 2012년 9월까지 필리핀에서 한국인 관광객 16명을 납치해 5억7100만원을 빼앗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4명을 살해하고 A씨 아들과 송모(실종 당시 37세)씨가 실종됐다고 지난 22일 발표했다.

수사당국은 지난해 11월 필리핀 경찰청 납치사건전담반과 함께 마닐라 외곽에 있는 한 주택에서 2010년 12월 실종된 김모(실종 당시 50세)씨와 2011년 9월 연락이 끊긴 홍모(〃 29)씨의 시신을 발굴했다.

김·홍씨의 시신 발굴장소는 수상당국이 단서를 찾은 것이 아니라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최세용 일당이 다른 수감자에게 이 같은 사실을 털어 놓아 밝혀졌다. 최세용 일당을 수사하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 수사당국이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 수사당국이 실종자 수사에 소극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안양 환전소 살인사건 및 필리핀 연쇄 납치사건 피의자 김성곤이 한-필리핀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되고 있다. 김성곤은 공범 최세용, 김종석 등과 2007년 경기도 안양시 한 사설환전소에서 여직원을 살해한 뒤 필리핀으로 도주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인 관광객 등을 상대로 납치·강도 등의 범행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법무부는 불법총기소지 등의 혐의로 필리핀 감옥에서 복역 중인 김성곤을 현지 형 집행을 중지한 뒤 국내로 이송해 수사와 재판을 받도록 하는 임시인도 방식으로 이날 송환했다. 2015.5.13/뉴스1 ⓒ News1 정회성 기자

A씨에게 37세로 멈춰버린 5대 독자 윤씨는 누구보다 성실했으며 마음 따뜻한 아들이었다.

A씨는 “어렸을 때부터 크게 속을 썩인 적도 없고 자신이 맡은 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그런 아이였다”며 “사교성도 좋아 학창시절과 공군 장교 시절에도 동료 및 선후배에게 인기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부터 파일럿이 꿈이었던 윤씨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해 중령으로 예편했다. 비록 야맹증이 있어 파일럿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육상에서 근무하며 파일럿의 또 다른 눈과 귀가 되어주었던 그였다.

군인이라는 자신의 직업을 소중히 여기던 그는 37세가 되던 해 대령 진급을 앞두고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다른 후배들을 위해 ‘비켜줘야 할 때’라며 전역을 결심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는 것 같아 부모의 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자신이 아닌 남을 배려하는 아들에 모습에 그의 결정을 함께 축복했다.

전역 후 윤씨는 각종 자격증을 취득해 외국계 회사 입사를 앞두고 필리핀으로 ‘힐링 여행’을 떠났다. 가족들은 평소에도 외국 여행을 자주 가던 아들인 만큼 큰 걱정 없이 받아들였다.

5대 독자로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의 실종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A씨는 남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60이 넘은 나이에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이날도 일을 했다.

건강은 조금씩 나빠지고 마음은 이미 무너져 내린지 오래지만 혹시나 아들이 살아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A씨의 눈가는 지난 5년간 마른 적이 없다.

A씨는 “제발 아들 좀 찾게 도와주세요. 시신이라도 찾아야 가슴에라도 묻지…”라며 또 굵은 눈물을 흘렸다.

inam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