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 안희제 독립운동 잇는다…국회서 '백산연구회' 세미나

각계 인사 53명 참여…안희제 독립운동·교육·경제 활동 연구
황현필 "임시정부 초기 운영자금 약 60% 조달한 인물로 알려져"

백산연구회 관계자와 참석자들이 2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백산 안희제의 업적과 현대적 교훈' 세미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뉴스1) 이윤희 기자 = 백산 안희제 선생의 독립운동과 그 정신을 연구하고 알리기 위한 '백산연구회'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백산연구회는 2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백산 안희제의 업적과 현대적 교훈'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안민석 경기도교육감과 김희곤 독립기념관장 등이 참석했다.

백산연구회는 안희제 선생의 독립운동과 교육·경제 활동을 연구하고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각계각층 인사 53명으로 구성됐으며, 유원준 경희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연구회는 대동청년단과 백산상회, 기미육영회, 중외일보, 발해농장 등 안희제 선생이 펼친 독립운동 전반을 연구할 계획이다.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 한편 안희제 선생과 함께했던 인물들의 활동도 찾아 나갈 예정이다.

이날 세미나는 우흥명 강원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황현필 역사바로잡기연구소장이 '백산 안희제의 삶과 자력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고, 이동언 백산학술원장이 '독립운동 CEO 백산'을 주제로 발표했다. 유원준 경희대 사학과 명예교수와 김주용 원광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신하은 광성드림학교 역사교사는 토론에 참여했다.

황 소장은 기조강연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자금 확보가 중요했지만 임시정부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시정부 초기 운영 자금의 약 60퍼센트를 조달한 인물로 알려진 사람이 백산 안희제"라고 했다.

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안희제 선생은 1914년 토지 2000마지기를 팔아 백산상회를 세웠다. 임시정부 수립 이후 백산상회는 국내와 임시정부를 잇는 연락 거점이자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해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의 활동 비용도 백산상회를 통해 마련됐다.

안희제 선생은 기미육영회를 통한 유학생 지원과 중외일보 사장 등 교육·언론 활동도 펼쳤다. 이후 만주에 발해농장과 발해보통학교를 세워 한인들의 정착과 교육을 도왔다.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 순국했으며,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이동언 백산학술원장은 안희제 선생의 교육사업과 백산상회, 장학사업, 언론활동, 발해농장 등을 소개하며 독립운동 자금 지원을 주요 공적으로 꼽았다.

김주용 원광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안희제 선생이 직접 남긴 기록이 많지 않고 당시 상황을 증언할 사람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관련 기록을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하은 광성드림학교 역사교사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백산상회를 언급한 교과서는 1종뿐이며 '안희제', '발해농장', '기미육영회' 등은 수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황 소장은 백산연구회의 역할과 관련해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으며, 안희제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활동까지 역사 속에서 되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원준 초대 이사장은 "백산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단순히 한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백산이 보여준 용기와 지혜, 실천과 헌신을 오늘날 어떻게 이어갈지 연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ly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