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서 놀고 잠만 자러 와요"…GTX 개통 뒤 파주 운정 상권 '한숨'
주말·저녁 한산한 거리…회식·쇼핑·주말 약속 서울로
지역경제 활성화 대신 '빨대 효과'에 당혹
- 박대준 기자
(파주=뉴스1) 박대준 기자
"GTX만 뚫리면 유동 인구가 많아져 장사가 잘될 줄 알았죠. 인구 유입도 늘고 새로운 상권도 형성돼 기대가 높았는데, 오히려 동네 사람들이 서울로 빠져나가 금요일 저녁에도 거리가 한산해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운정중앙~서울역 구간 개통으로 서울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지만, 파주 운정신도시 상인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손님이 서울로 빠져나간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교통 혁명이 지역 상권 활성화와 외부 인구 유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주민들의 소비 반경까지 서울로 넓어지면서 이른바 '빨대효과'를 체감한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저녁 파주 운정신도시 운정중앙역 인근 상업지구. 줄지어 늘어선 화려한 간판과 달리 거리는 퇴근길 직장인과 외식·쇼핑을 나온 시민 몇몇만 오갈 뿐 비교적 한산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었지만 식당가 곳곳에서는 빈 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일부 상인들은 출입문 밖을 바라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GTX-A 운정중앙~서울역 구간은 2024년 12월 말 개통했다. 이후 약 1년 8개월이 지나면서 운정지역 상인들 사이에서는 "GTX 개통이 지역 상권에는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운정중앙역에서 서울역까지 이동시간이 20분대로 단축되면서 서울 출퇴근 여건이 크게 개선되는 것은 물론, 역 주변 유동인구 증가와 상권 확대, 외부 방문객 유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였다.
운정중앙역 일대에 새로운 상업시설 공급도 이어지면서 기존 운정·야당 중심의 상권이 한 단계 확장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이 체감하는 모습은 다소 달랐다.
서울 도심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출퇴근은 편해졌지만 동시에 주민들이 서울에서 소비하기도 훨씬 쉬워졌다는 것이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 모 씨(54)는 "예전에는 퇴근한 뒤 동네에서 한잔하던 직장인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서울역이나 홍대, 연남동 쪽에서 회식이나 모임을 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 손님들도 서울의 백화점이나 유명 카페, 시장 등을 찾아 나가는 경우가 늘면서 매출이 GTX 개통 전보다 오히려 줄었다"고 토로했다.
주점을 운영하는 한 모 씨(34)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한 씨는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운정이나 야당에서 저녁 약속을 많이 잡았는데 서울까지 가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주말 약속을 아예 서울에서 잡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며 "특히 젊은 층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생활 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강 모 씨(29)는 "30분 정도면 사람도 많고 즐길 거리도 많은 서울 주요 상권으로 갈 수 있으니 친구들과 약속할 때 자연스럽게 서울을 선택하게 된다"며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명동이나 남대문 등에서 쇼핑이나 문화생활을 즐기는 일이 예전보다 쉬워졌다"고 말했다.
GTX가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쇼핑과 외식, 여가를 즐기는 범위까지 서울 도심으로 넓혀놓은 셈이다.
지역 상인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교통망 개선으로 수도권 외곽지역과 중심도시 간 이동시간이 크게 단축될 경우 중심도시의 대형 상권이 주변지역의 소비 수요까지 흡수하는 이른바 '빨대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다만 현재 운정 상권 전반의 매출 감소가 GTX 개통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경기 상황과 소비 위축, 상권별 특성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객관적인 매출과 유동인구 변화에 대한 추가 분석도 필요하다.
파주시와 지역 상권도 GTX 이용객의 발길을 지역 내 소비로 연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파주도시공사는 최근 GTX-A 운정중앙역 환승센터 이용객을 인근 골목상권으로 유도하기 위한 '지역상권 안내서비스'를 구축했다. 역을 이용하는 유동인구를 지역 상권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운정중앙역에는 파주 주요 관광지와 GTX 연계 관광정보 등을 제공하는 관광안내소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접근성 개선만으로는 서울의 대형 상권과 경쟁하기 어려운 만큼 주민과 외부 방문객이 운정에서 시간을 보내고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근 고양시가 대형공연을 적극 유치하고 이를 관광·숙박·외식 등 지역 소비와 연계하는 전략을 펴는 것도 참고할 사례로 거론된다. 고양시는 '고양콘'을 통해 공연 관람객을 지역상권과 관광으로 연결하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운정호수공원 등 기존 자원과 문화·공연·먹거리 콘텐츠를 결합하고, 운정중앙역을 통해 들어온 방문객이 지역에 머무를 수 있도록 상권과 관광 동선을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이 가까워진 건 좋은데, 동네가 비면 무슨 소용이냐"는 상인들의 말처럼, GTX 시대 운정의 숙제는 이동시간 단축을 지역 안의 소비와 활력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djpark@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