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의거에서 '통곡의 역'까지…독립운동 발자취 따라 4박5일

안민석 경기교육감, 안중근·최재형 등 유적 찾아 중국·러시아 횡단
고려인 강제이주 라즈돌노예역·민족교육 근거지 신한촌도 방문

안민석 경기교육감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선생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제공)

(베이징=뉴스1) 이윤희 기자 = 중국 하얼빈에서 러시아 연해주까지 이어진 길에는 독립운동의 여러 모습이 남아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백산 안희제 선생이 한인들의 자립을 위해 세운 발해농장, 최재형 선생이 독립운동과 한인 사회를 지원했던 우수리스크가 그 현장이다.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의 첫 열차가 출발한 라즈돌노예역과 연해주 한인 사회의 근거지였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도 있다.

안민석 경기교육감과 탐방단은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중국·러시아 항일 독립운동 유적 및 민족교육 현장 탐방을 15일 마쳤다. 4박5일간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안중근 의사와 안희제·최재형·이상설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현장과 연해주 한인들의 역사를 살폈다.

하얼빈 의거에서 발해농장까지…국경 밖에서 이어진 독립운동

중국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에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재판, 순국 과정이 전시돼 있다.

안 교육감은 기념관을 둘러본 뒤 방명록에 "역사의 뜻을 이어받아 평화를 함께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113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 '황현필 한국사'를 운영하는 황현필 역사바로잡기연구소장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당시 국제정세를 설명했다. 탐방단은 황 소장의 해설을 들으며 기념관과 조린공원에 남아 있는 항일 독립운동 관련 유적을 살폈다.

하얼빈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간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 발해진에는 백산 안희제 선생이 세운 발해농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안희제 선생은 1933년 발해의 옛 수도였던 동경성 일대에 발해농장을 세웠다. 중국인 지주 밑에서 소작하던 한인 농민 300여 호를 이주시켜 토지를 분배하고 자작농이 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농장에는 발해학교를 세워 농민과 자녀들을 대상으로 민족교육도 실시했다.

김선정 단국대학교 교수(왼쪽)가 12일(현지시간)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 발해진의 발해농장에서 안희제의 넋을 기리는 살풀이춤을 선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장단과 소리를 맡은 박범태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경기도교육청 제공)

탐방단은 발해농장 일대를 둘러봤다. 김선정 단국대 교수는 이곳에서 안희제 선생을 추모하는 살풀이춤을 선보였고 박범태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가 장단과 소리를 맡았다.

중국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넘어가는 데는 8시간이 걸렸다. 오전 7시 중국 수분하를 출발해 열차로 3시간을 이동한 뒤 국경에서 출입국 심사에 다시 3시간을 보냈다. 러시아에 들어선 뒤에도 버스로 2시간을 더 달렸다. 끼니는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도착지는 우수리스크였다. 이곳에는 '페치카'로 불린 최재형 선생의 옛집이 남아 있다.

최재형 선생은 군납사업 등을 통해 모은 재산을 독립운동과 연해주 한인 사회를 위해 사용했다. 한인 교육에도 힘써 학교 설립을 지원했다. 동포들은 러시아어로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라는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

탐방단은 최재형 고택 기념관과 고려인 민족학교, 기념비와 흉상을 찾았다.

기념비 앞에서는 이현주 이충고등학교 교사가 비문을 낭독하고 함성식 진안초등학교 교장이 추념사를 했다. 김선정 교수는 박범태 강사의 장단과 소리에 맞춰 살풀이춤을 선보였다.

안 교육감은 "한인 동포들에게 온기를 나눴던 '페치카' 최재형의 삶은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고 필요한 곳에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경기교육의 '손난로 교육'과 맞닿아 있다"며 "그 정신을 교육 현장에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독립운동 근거지에서 강제이주 현장으로…연해주 한인의 역사
안민석 경기교육감(가운데)이 러시아 라즈돌노예역에서 황태범 양주 백석고등학교 역사교사(오른쪽)의 고려인 강제이주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경기교육청 제공)

우수리스크에는 보재 이상설 선생의 흔적도 남아 있다. 수이푼강 인근에는 1917년 이곳에서 생을 마친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이상설 선생은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파견돼 일제의 침략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이후 연해주에서 13도의군과 성명회, 권업회 등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1917년 우수리스크에서 숨진 뒤 유언에 따라 시신은 화장됐고 유해는 수이푼강에 뿌려졌다.

독립운동의 주요 무대였던 연해주는 1937년 고려인들에게 강제이주의 현장이 됐다.

우수리스크 인근 라즈돌노예역에서는 1937년 9월 9일 고려인들을 태운 첫 강제이주 열차가 중앙아시아를 향해 출발했다. 이후 연해주 곳곳에서 고려인 17만2000여 명이 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 이주됐다.

'통곡의 역'으로 불리는 라즈돌노예역에는 당시의 역사와 철로가 남아 있다. 황태범 양주 백석고등학교 역사교사는 역 앞에서 고려인 강제이주의 배경과 과정을 설명했다.

안민석 경기교육감(가운데)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기념비에서 이문구 초등교육과장(오른쪽), 윤준기 가평 마장초등학교 교감과 함께 헌화하고 있다. (경기교육청 제공)

탐방단은 오래된 역사와 철로를 둘러본 뒤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으로 이동했다.

신한촌은 연해주 한인들의 집단 거주지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였다. 한인 자치조직과 독립운동단체가 활동했고 망명 독립운동가들이 모였다.

안 교육감과 이문구 경기교육청 초등교육과장, 윤준기 가평 마장초등학교 교감은 신한촌 기념비에 흰 국화를 헌화하고 독립운동가와 연해주 한인들을 추모했다.

탐방단은 한민학교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일대도 둘러봤다. 한민학교는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 일대 한인학교들이 통합되면서 출범했다. 한인들이 신한촌으로 이주한 뒤인 1912년 권업회 주도로 다시 문을 열었으며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때까지 민족교육을 이어갔다.

중국과 러시아에서의 현장 탐방을 마친 일행은 15일 베이징 유리창 거리 인근 찻집에서 약 1시간 동안 '역사교육 대전환'을 주제로 토론했다. 이번 탐방에서 확인한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의 역사를 학교 교육과 연계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안 교육감은 "국경을 넘고 장시간 이동하는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독립운동가들이 낯선 땅에서도 학교를 세우고 민족의 뿌리를 지킨 이유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번 탐방에서 얻은 교훈을 경기 역사교육의 변화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안민석 경기교육감(왼쪽 일곱 번째)과 일행이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ly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