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서 만주까지 이어진 '교육독립'…안민석, 안희제 흔적 찾았다
2019년 국회 학술회의서 조명한 뒤 7년 만에 현장 방문
"폐교된 발해학교 리모델링해 안희제 기념관으로"
- 이윤희 기자
(발해진=뉴스1) 이윤희 기자 = 나라를 되찾으려면 먼저 사람을 길러야 한다고 믿었던 백산 안희제. 경남 의령에서 학교를 세운 그는 만주로 건너가 농장을 일구고 다시 교실을 열었다. 90여 년 뒤인 12일(현지시간), 같은 의령 출신인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이 중국 발해진에 남은 그의 교육독립 현장을 찾았다.
안 교육감은 중국과 러시아 항일 독립운동 유적 방문 이틀째인 이날 안희제가 만주에 세운 발해농장과 발해학교를 둘러봤다.
발해농장과 발해학교는 단순한 생산·교육시설이 아니었다. 중국인 지주의 수탈을 받던 한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그 자녀들이 우리말과 민족의식을 잃지 않도록 지켜낸 독립운동의 기반이었다.
안희제는 1885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신학문을 배운 그는 나라를 되찾으려면 먼저 사람을 길러야 한다고 봤다.
1907년 부산 구포에 구명학교와 의령에 의신학교를 세웠고, 이듬해에는 고향 의령 입산리에 창남학교를 설립했다. 교실에서 시작한 그의 독립운동이었다.
1909년에는 항일 비밀결사 대동청년당을 조직했다. 이후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운영하며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의 연락망을 구축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1933년 만주로 망명한 뒤에는 발해의 옛 도읍인 동경성에 발해농장과 발해학교를 세웠다. 중국인 지주의 수탈을 받던 한인 소작농 300여 가구를 이주시킨 뒤 토지를 나눠주고 자작농으로 정착하도록 도왔다.
발해학교에서는 농민과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민족교육을 했다. 발해농장이 타국에서 살아갈 힘을 준 삶의 터전이었다면, 발해학교는 우리말과 민족의식을 지켜낸 교실이었다. 안희제는 농장과 학교를 통해 빼앗긴 나라의 내일을 준비했다.
그가 설립해 초대 교장을 맡았던 발해학교는 현재 문을 닫은 상태다. 학교 인근에는 안희제가 거처 겸 발해농장 사무실로 사용했던 건물이 90여 년의 시간을 견디며 남아 있다.
안 교육감이 안희제의 독립운동을 조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회의원 시절인 20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회에서 열린 '백산 안희제와 국외독립운동기지 발해농장' 학술회의를 공동 주최했다. 안희제의 독립운동을 알리고 발해농장 보존 방안을 찾기 위한 자리였다.
당시 국회에서 자료로 접했던 발해농장에 7년 뒤 직접 선 것이다. 의령에서 시작된 안희제의 교육독립운동이 부산 백산상회를 거쳐 만주 발해학교까지 이어진 길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안 교육감은 "안희제 선생이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맡았던 발해학교가 현재 폐교돼 있다"며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안희제 선생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발해농장과 발해학교에 담긴 역사와 독립운동 정신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ly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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